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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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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리움에 대한 헌시(獻詩), 그 이별을 위한 노래- 김정대(경남대 명예교수)

김준형 박사의 영문 소설 ‘송별연 Farewell Party’을 읽고

  • 기사입력 : 2022-03-02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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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가 최근 영어로 된 이색적인 소설집을 영국에서 출간했다. 저자는 전공 서적 외에 여러 편의 자전적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창동 인 블루’라는 이름의 일곱 권 시리즈 소설과 ‘과거의 우물’, 또 다른 영문 소설 ‘볼 수 없는 풍경 Landscapes Invisible’ 등이 그것이다. 마산에서 태어나 저술가, 플라멩코 공연 기획가, 대학 강사 등으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자유 기고가로 글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자전적 소설 ‘송별연’은 모두 15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이 세 가지는 다시 큰 하나의 주제로 귀일하는 내밀(內密)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세 가지의 내용에는 그 대상이 모두 ‘그리움’이고 그것들과 이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의 경우, 그리움은 인문학적인 소양의 근원이 되는 자산이자(주인공의 이름도 ‘인문 Inmun’이다) 자신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첫 번째 내용은 주인공이 자신의 조상들을 그리워하고 그것과 이별하는 것이다. 창원의 천주산 어느 참나무 아래에는 할머니(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 되는 핏덩이 아들을 남기고는 20살에 저세상으로 간 분)와 부모님 무덤이, 진동 앞 수우도에는 6대조 조상의 무덤이 있다. 70대 노년기에 접어든 주인공은 더 이상 조상의 산소를 돌볼 여력이 없어 풍장 혹은 화장으로 선산을 파묘하고 이별의 의식을 치른다.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전통적인 판소리와 스페인 집시의 플라멩코다. 두 번째 내용은 인문이 마산 창동의 예술가들을 그리워하고 그들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어릴 때 경험한 구강 앞바다의 아늑한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창동에는 추억의 카페 ‘만·고모령’이 있고, 현재호·남재현·허청령 등 ‘창동 학파’ 화가가 있다. 그곳은 교당·이필이·김숙·정자봉 등 문화계·학계의 거목과 교감하던 장소이고, 미국인 친구 타일러, 아마추어 마법사, 술 취한 기타리스트 등과 우정의 술잔을 기울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세 번째 내용은 인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3·15의거에서 ‘꽃 중의 꽃’으로 산화한 김용실 열사에 대한 그리움과 그와의 송별을 다룬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던 벗이 청춘을 조국의 민주화와 맞바꿨다는 사실에 늘 마음의 빚을 안고 있던 인문이다. 그래서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친구를 추모하는 판소리·플라멩코 공연을 기획했고, 2020년 대한민국 4·15총선이 부정 선거라는 확신을 갖고 그것에 항의하는 데모에 헌신적으로 참여한다. 이것이 친구 김용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 송별연인 셈이다.

    ‘송별연’의 영문 문장은 매우 맛깔스럽다. “그 바다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깔과 소리와 냄새가 달랐다. 그 속에서 소년은 부채 모양의 해변으로 부서지는 은빛 잔물결을 사랑했다. 거기에는 늦겨울 아침 쏟아지는 햇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47쪽)와 같은 서정적 표현은 나사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의 그 수려한 문체를 떠올리게 한다. 책 곳곳에 자리한, 마산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말 고유명사들이 외국인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기도 한 이 책을 독자들께 기꺼운 마음으로 권한다.

    김정대(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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