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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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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상규명 1호 신청자 이영조씨

“3·15의거 때 청춘 잃은 형의 恨 풀어주길”

  • 기사입력 : 2022-03-13 2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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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서에서 다리와 손을 묶은 채 몽둥이로 팼다. 머리에는 피가 많이 흘렀다.’ 형님은 정신병을 앓았지만,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당시 상황을 가족들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지난 1월 21일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창원사무소 개소 후 첫 번째 ‘진실 규명 신청서‘를 접수한 이영조(73)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추가로 형님의 피해 진술을 밝혔다. 이씨는 3·15의거에 참여한 친형 이점덕(79)씨의 진상을 규명해 유공자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점덕씨는 8남매 중 넷째인 이영조씨에게 바로 위 셋째 형님이 된다.

    그는 진실 규명 신청 취지에서 “십 대 후반의 어린 나이로 3·15의거에 참여하여 심한 부상의 후유증으로 이후 80여 년 한평생을 홀홀단신 병마(조현병)와 싸우며 고통과 외로움으로 청춘을 잃어버린 인생의 마지막 한을 풀어달라”고 썼다.

    “형님 이점덕 10대 때 시위 참가
    구타·고문 당해 정신질환 앓아
    가끔 경찰봉으로 맞은 얘기해

    의거참여 녹취록 어렵게 확보
    명예 회복해 평생 한 풀고 싶어”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창원사무소에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한 이영조씨가 친형인 이점덕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창원사무소에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한 이영조씨가 친형인 이점덕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이씨는 “형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시위에 가담해 경찰에 불심으로 검거됐다”며 “구타와 심한 고문으로 인해 실신 상태로 귀가했으며 귀가 당시 머리 부위와 귀 뒤쪽 부위에 상처로 선혈이 낭자해 동네 의원에서 응급조치를 했다. 지금도 60여 년 전 그때 일을 물어보면 경찰봉으로 구타당한 사실을 가끔 기억하곤 한다”고 진실규명신청서에 보증했다고 밝혔다.

    또 “1960년 3월 15일 당시 야간학교에 다니던 형은 의거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그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이 생겨 1967년부터 현재까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형님은 경찰서에서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돌아왔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활발하던 성격이었는데 그 후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형은 여성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혼자서 웃고, 기분이 안 좋으면 ‘김일성 때려잡으러 간다’고 소리를 쳤다. 하루에 12번 정도 형님 혼자서 남성동 파출소까지 다녀왔다. 아마 남성동 파출소에 잡혀간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해 ‘3·15 의거법’이 제정된다는 뉴스를 보고 형의 명예를 회복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홀로 국가보훈처와 경찰서를 찾았지만, 형님이 의거에 참가했다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통보만 받았다”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 국가기록원을 찾아가 형님이 의거에 참가 후 검찰에 송치된 기록이 담긴 형사 사건 기록부를 찾게 됐다. 당시 의거에 참여한 친척, 이웃 주민을 수소문해 형님이 의거에 참가했다는 녹취록과 정신병 진단 기록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1962년에 형님은 영장을 받아 의정부에서 군 복무도 했었다. 아픈 형님은 군 생활 중 이상행동을 보여 구타도 많이 당했다”며 “형님은 현재 마산합포구의 한 정신요양원에 입원해 있다. 살아생전 형님의 한을 풀어줄 시간은 촉박한데 진상규명이 언제쯤 이뤄질지 자꾸만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형님의 명예라도 부디 되찾아 주고 싶다”고 호소했다.

    박준혁 수습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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