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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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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소멸 리포트] ② 도내 소멸 고위험 지역

주인 떠난 집엔 흙묻은 고무신… 아이들 떠난 학교엔 잡풀만
거창 가북면·의령 궁류면 가다
아이 웃음 끊긴 ‘거창 가북면’

  • 기사입력 : 2022-03-17 21: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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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내 소멸 위험 지역의 마을 분위기는 한마디로 을씨년스러웠다. 지난 14일 거창군 가북면, 의령군 궁류면 마을을 둘러보고 주민들을 만나봤다. 이들 지역은 올해 1월 기준 도내 지방소멸 지수가 가장 심각한 곳이다. 마을 어귀, 안길에서도 주민들을 만나기 어려웠고 지나가는 차량조차 드물었다. 이 지역은 수십 년째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다 노인 인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 지자체는 최대 13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비롯해 전입지원금 등을 주겠다며 인구 증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아무 것도 없는 산골에 누가 오겠냐”며 “슬프지만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우리 마을은 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다.

    14일 오전 의령군 궁류면 소재 빈 집에 낡은 신이 버려져 있다. 해당 집은 소유주가 있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 앞 마당은 마을 주민들의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14일 오전 의령군 궁류면 소재 빈 집에 낡은 신이 버려져 있다. 해당 집은 소유주가 있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 앞 마당은 마을 주민들의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했는데…”= 올해 1월 기준 거창군 가북면의 지방소멸 위험지수는 0.03으로 도내 305개 읍면동 중 가장 심각한 수치다. 가북면의 65세 이상 인구는 690명인데 반해 20~39세 가임여성 인구는 20명에 불과하다. 의령군 궁류면은 0.04로 도내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곳이다. 이들 지역에는 면 전체를 통틀어 편의점 하나 없다.

    거창군 가북면에서 지금껏 살아 온 이강복(61) 중촌리 이장은 어린 시절 왁작거리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1970년대 가북면 인구는 9000여명에 이를 정도여서 집집마다 아이들로 가득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이장은 “과거 산비탈에도 사람들이 살 정도로 마을이 북적였고 출신 학교인 중촌분교는 한 반에 학생이 50명이나 됐다”며 “지금은 중촌리 내 3개 마을에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해발 약 700m에 위치한 산골인 중촌리는 적막했다. 올 2월 기준 중촌리 인구는 94명에 불과하다. 중촌리 소재 가북초등학교 중촌분교는 1994년 폐교됐고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현재 잡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중촌리 내의 다전·동촌·고비 마을에서는 빈집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빈집들은 창호지가 다 뜯겨나간 오래된 한옥이었다. 그나마 정부의 빈집 정비사업을 통해 다수 빈집이 철거돼 마을 전체가 쇠락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막았다.

    잡풀이 무성한 거창군 가북면 중촌분교.
    잡풀이 무성한 거창군 가북면 중촌분교.

    의령군 궁류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궁류면 운계리 입사마을은 하루에 두 번 버스가 오는 오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도 빈집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곳저곳이 부서진 집에는 오래된 고무신 한 짝과 운동화 한 켤레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입사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빈달선(82·여)씨는 옹기종기 모인 집들에서 사람 소리가 가득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빈씨는 “이 마을에 시집 온 지 60년이 넘었다. 그 때만 해도 마을에는 50여 가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20가구 남짓 남았다”고 말했다.

    1982년부터 1991년까지 궁류면장을 지낸 전병태(86)씨에게도 면의 쇠락은 안타깝기만 하다. 전씨는 “1970년대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궁류면에는 활기가 돌았고 당시 궁류시장은 의령 내 5대 장에도 들 만큼 경제도 활발했다”며 “모교인 궁류초등학교의 전교생도 재학 당시 600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흔한 시골학교가 됐다”고 말했다. 궁류초등학교의 1968년 학생 수는 917명이었으나 올 2월에는 7명이다.

    14일 오전 의령군 소재 폐교된 궁류초 평촌분교 앞에 낡은 의자가 놓여 있다. 평촌분교는 1998년 폐교된 이후 의령예술촌 건물로 활용되다가 현재는 방치돼 있다.
    14일 오전 의령군 소재 폐교된 궁류초 평촌분교 앞에 낡은 의자가 놓여 있다. 평촌분교는 1998년 폐교된 이후 의령예술촌 건물로 활용되다가 현재는 방치돼 있다.

    ◇인구 30% 이상 줄고 노인이 과반= 이들 지역의 인구 사정은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국가통계포털에서 면지역 인구를 조회할 수 있는 시작 년도인 1998년의 거창군 가북면 인구는 2070명이다. 23년이 지난 2021년에는 1360명으로 34.3% 감소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5.7%에서 50.8%로 껑충 뛰었다.

    의령군 궁류면 인구는 1665명에서 1119명으로 32.8% 줄어들었고 노인 인구 비율도 28.6%에서 56.5%로 과반을 넘어섰다. 이들 지역의 인구 피라미드를 보면 1998년에만 해도 젊은 인구가 남아 있어 표주박 형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 2021년에는 역피라미드 형태를 넘어 40세 미만 인구가 극단적으로 적은 버섯 모양을 띄고 있다.


    ◇출산장려금 최대 1300만원…지자체, 안간힘=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지자체들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대 13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전입지원금 등 인구 정책 세부 종류만 해도 각 지자체 당 20개가 넘는다. 덕분에 거창군은 2021년 기준 도내 군지역 최저 인구 감소를 기록하는 성과도 올리고 있다.

    거창군은 2019년 1월 인구 문제 전담 부서를 신설했고 면지역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군은 LH와 함께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전입을 유도하고 있다. 또 면 지역의 빈집을 리모델링해 작은 학교에 전·입학하는 전입세대에 무상 임대를 주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지난해 10월 기준 46명이 거창군으로 전입 했고 이중 초등생이 17명, 영유아는 11명이다.

    의령군도 지난해 10월 소멸위기대응추진단을 신설해 인구 지방소멸에 대응하고 있다. 의령군 첫째아 400만원, 둘째아 600만원, 셋째아 13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출생 후 최대 60개월에 걸쳐 지급한다. 이는 지난해보다 300만원 인상된 금액이다. 또 신혼부부 주거자금 대출이자 지원, 산후조리비 지원 등을 올해 추가로 시행하고 있다.

    의령군 관계자는 “소멸위기대응추진단이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는 이른 상황”이라며 “인구 문제는 군의 명운이 달린 것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거창군 가북면 한 마을에 방치된 빈집.
    거창군 가북면 한 마을에 방치된 빈집.
    의령군 궁류면 소재 빈 집.
    의령군 궁류면 소재 빈 집.

    ◇“소멸, 피할 수 없다”= 거창군 가북면, 의령군 궁류면 지역에서 살아 온 이들은 사실상 소멸을 피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지난 수십 년간 줄어들고 있는 인구 추세를 반전시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창군 가북면 이강복 중촌리 이장은 “서글프지만 어쩔 방도가 없다”며 “10년만 있어도 대부분의 노인 인구가 자연 감소함에 따라 인구는 지금보다 더 급격한 속도로 줄 것이다. 소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공동체 사업 등 정부 정책 다수가 실효성이 없다. 주민들이 워낙 고령이라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며 “거창군의 최근 성과도 오래 지속되긴 힘들 거라 본다. 행정 구역 통폐합 등 소멸을 인정하는 차원의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덧붙였다.

    전병태 전 의령군 궁류면장은 소멸을 받아들이되 소멸 속도는 늦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지금 궁류면 인구 상황은 회생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지방 소멸을 정책적으로 준비할 시간은 벌어야 한다. 과감한 인센티브를 통해 공직자와 공공 기관 종사자들만이라도 지방에서 거주하게 하면 소멸을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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