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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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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보라와 베리 페리- 나순용(수필가)

  • 기사입력 : 2022-10-18 19: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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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색채연구기업이 베리 페리(Very Peri)라는 연보라를 2022년 올해의 색으로 발표했다. 마치 라일락꽃 향기가 바람에 날아 올 것만 같은 색이다. 보라는 양 극단의 색인 빨강과 파랑이 섞여서 만들어 낸다. 색은 시대를 반영한다. 지금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헤쳐 나오는 중이다. 꿈과 희망, 치유의 색인 보라색을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묘하며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신비로움과 종교적이고 영적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 보라색이 아닌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전보다 훨씬 보라가 눈에 많이 띈다. 아마도 BTS를 비롯한 일부 연예인이 벌써 세상을 온통 보라로 물들여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라색 꽃만 하더라도 도저히 물감으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따스한 봄날 담벼락 틈에서 작은 미소를 보내는 제비꽃은 처진 어깨를 추스르게 만든다. 나팔꽃, 도라지꽃, 엉겅퀴, 부레옥잠은 흔하디 흔하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모두 보라지만 같은 색도 아니다. 그늘진 숲에서 보라 융단이 돼주는 맥문동과 무리를 지어 꿈의 정원을 만드는 라벤더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 색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징성을 가지며 심지어 이념을 가르는 용도로도 쓰인다. 하지만 보라색은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색이 아니다. 아마도 이런 꽃의 고운 빛깔이 주는 위로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을은 저마다의 빛깔을 온통 채우며 우리 곁에 왔다. 갈맷빛이던 뒷산은 노랑과 주홍을 데리고 마을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는 중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변화무쌍한 흰 구름이 신난 듯 바람 따라 흘러간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푸른빛 도는 보라인가 하면 은빛이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의 황금빛은 또 어떤가! 먹지 않아도 포만감으로 가슴은 벅차오른다. 석양은 보랏빛 기다란 띠를 만들어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며 산을 넘어간다. 얼마 후면 수확을 끝내고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에 연보라 쑥부쟁이가 맑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텅 빈 충만감을 안겨줄 것이다. 비록 작고 연약한 풀꽃이지만, 그동안 코로나로 꽉 막혔던 마음과 영혼까지 정화해 줄 것만 같다.

    나순용(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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