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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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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우리, 함께, 다시 가을- 황선영(의령교육지원청 장학사)

  • 기사입력 : 2022-10-19 19: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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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안녕하신가요?

    단풍이 물들어가는 의령의 평안함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요. 마을도 학교도 아름다운 계절을 보내기 섭섭한지 축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던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초임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우리는 아직 대학생의 티를 벗지 못하고 대동제를 준비하는 것 마냥 들떴습니다. 선생님 반은 핫한 댄스를 선보일 요량으로 밤늦은 연습을 했지요. 저는 선생님을 도와 시장에서 나일론 천을 떼어다가 서툰 바느질로 무대 의상을 만들기에 바빴다지요. 화려한 무대 의상은 개뿔, 꼼꼼하지 못한 손박음질 사이로 맨살이 보여 좀 민망하기도 했네요. 아이들은 여자가 바느질도 제대로 못 한다며 저를 구박 하기도 했습니다.(녀석들을 다시 만나면 성차별이라고 꼭 혼내줄 겁니다) 웃고 떠들고, 그러다 새벽 퇴근은 덤이었습니다. 오늘 쌀쌀한 밤의 기운은 그날 새벽의 퇴근길을 닮은 듯합니다. 드디어 축제 날, 박지윤의 성인식이 흐르고 제가 바느질한 옷을 입고 다리를 한껏 드러낸 여섯 명의 멋진 남학생 사이로 그간의 몸치 이미지를 벗겠다는 양 과감하고 끈적거리는 춤으로 선생님이 등장했습니다. 몹쓸 몸짓에 학생들은 자지러 졌지만 저는 선생님이 좀 많이 멋져 보였습니다.

    요즘도 학교 축제는 여전히 힘든 사무입니다. 무대 장치에, 대본에, 학생들과 함께 만든 준비위원회 회의 만도 수 차례, 선생님은 흡사 방송국 PD라도 된 양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요. 그래도 축제의 막이 오르는 순간, 그간의 아픈 과정은 모두 날아가 버립니다. 무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함박 웃음, 잠재했던 무한한 끼를 여과 없이 발산하는 그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 선생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조금 있으면 마을과 학교는 한바탕 들썩이겠죠?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다시, 학생들과 어우러진 누군가를, 빛나는 시간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차가워지는 가을, 그대여 모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비염에 좋다는 작두콩차도 꼭 챙겨 드시길 바라요.

    -의령에서, 당신의 동료이자 아내 올림-

    황선영(의령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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