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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플라스틱 장례문화- 김태문(김해시 환경국장)

  • 기사입력 : 2022-11-08 19: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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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관습이 있다면 아마도 장례의식이 유일할 것이다. 고분군 발굴을 통해 당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장례의식이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대변하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는 곳마다 방법은 다를지라도 장례의식은 지금도 변함없다. 중동지역은 고인의 선행을 증언하면서 하루 만에 장례식을 치른다고 한다. 동남아 지역은 대부분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면서 조문객들을 맞는다. 우리 사회는 80년대 이후부터 도심 곳곳의 전문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덕분에 바쁜 현대인들은 쓰고 버리면 끝나는 일회용 식기 사용의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민간장례식장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장 많이 발생되는 곳이 됐다.

    김해에는 연간 2110건의 장례식에서 약 105t의 플라스틱 쓰레기와 탄소가 배출된다. 전국 1180개 장례식장에서는 연간 1만t가량의 플라스틱 쓰레기와 탄소가 배출된다고 보면 된다. 오늘날 환경문제로 민간장례식장에서 일회용 그릇 사용을 규제하려 해도 빈소마다 대용량의 세척시설을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보니 정부도 법적규제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김해시와 민간장례식장 대표들은 지난해 8월 민간장례식장에서 일회용 대신 다회용 식기를 사용하기로 협력했다. 시는 곧바로 60평(198㎡) 규모의 식기 세척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식기의 수거·세척·배송 문제를 고민했고, 장례식장 내 빈소마다 적기에 식기를 공급해야 하는 문제와 보관과 수량의 확인, 사용료 결재의 주체를 놓고 장례식장 대표들과 장기간 논의에 빠지기도 했다. 어떤 크기의 그릇으로 문상객들의 밥상을 구성하느냐도 놓칠 수 없는 논의의 대상이었다. 식기의 재질은 반영구적 재활용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재질로 결정했다. 세척장은 지난 5월부터 10명으로 구성된 ‘온새미로’라는 자활사업단을 꾸려 시범적으로 김해시민·한솔·진영하늘재 등 3개 장례식장에 다회용 식기를 유료 공급하기 시작했다.

    사용 전·후 식기를 별도 보관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왜 김해만 일회용을 못쓰게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은빛 스테인리스 접시의 음식들이 훨씬 정갈해 보인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10월 말까지 3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680건의 장례식 중 630건의 장례식에서 다회용 식기를 사용해 대략 22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줄어들었다. 지역사회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난방공사는 월 2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국제로타리 클럽은 식기구입비로 3000만원을 후원하고 다회용기 사용 장례식장을 홍보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세척시설을 확충해 김해 14개 전 민간장례식장에 다회용 식기를 사용토록 하고 상조회사나 근로자단체에서 보내는 일회용 상조물품까지 사용 금지할 계획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에 익숙해진 사회적 습관들을 하루빨리 고치는 것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숨 쉬기 좋은 생활환경을 물려줄 수 있다. 약간의 비용이 더 든다고 거부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플라스틱 조화로 성묘하지 말자는 것도 같은 취지다. 행여 먼 훗날, 21세기 한국의 장례의식은 역사나 문화가 아니라 일회용 플라스틱 배출의식에 불과한 것이라고 단정 짓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김태문(김해시 환경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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