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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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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겨울철 농업을 위한 단상-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 회장)

  • 기사입력 : 2022-12-14 19: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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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는 왜 농사를 지을 수 없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졌던 그리스인들은 그에 대한 합당한 답을 스스로 합리화시킨 재미난 일화가 있다. 바로 신화 속의 얘기다. 대개 인간이 자신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거나 다다르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 그러한 때에는 신의 영역으로 치환하여 신화를 창조해 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는 신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며 사실이거나, 설령 인간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겠는가 싶지 않을 정도로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온갖 별별스런 몽환적인 얘기거리로 넘쳐난다.

    그럼 왜 겨울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지 그 사유를 찾아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데메테르는 농업과 곡식의 여신이다. 그녀는 크로노스(제우스의 아버지)와 레아의 딸로 주신(主神) 제우스와는 누이이자 배우자이다. 데메테르라는 이름은 ‘곡식의 어머니’ 또는 ‘어머니의 대지’를 뜻한다.

    이 여신에겐 제우스와의 사이에 난 ‘페르세포네’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 어느 하루는 시칠리아 섬 헨나 고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꽃을 따다가 검푸른 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갑자기 땅 밑에서 나타난 하데스(저승을 주관하는 신)에 의해 저승으로 납치가 된다. 이 소식을 듣고 곡식과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는 올림포스를 떠나 실종된 딸을 찾아 지상을 떠돌아다니느라 농사를 돌보지 않자 대지에 곡식이 자라지 않게 된다. 데메테르를 달래지 않으면 인간들이 곧 다 죽고 신들도 제물을 받지 못할 처지가 되자, 제우스는 데메테르를 올림포스로 불러오게 하지만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돌려주지 않는 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자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저승에 가 있는 동안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제우스가 전령인 헤르메스를 지하의 저승으로 보내 페르세포네를 데려오게 하자 하데스도 이에 동의하고 그녀가 떠날 때 석류 열매 하나를 손에 쥐어 준다. 페르세포네가 도착하자 데메테르는 저승에서 무엇을 먹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처음에 페르세포네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아케론강의 아들 아스칼라포스가 그녀가 석류 열매 씨를 몇 알 먹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함으로 결국 그녀도 시인을 한다. 그녀는 네 개 내지 여섯개의 씨를 먹었다고 했다.

    일단 저승에서 무엇을 먹고 마신 자는 하데스의 것이 되므로 제우스는 그녀에게 일 년 중 8개월은 지상의 어머니 곁에 머물고 나머지 기간은 지하로 내려가서 하데스 곁에 머물라고 선언을 하자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가 자기 곁에 머무는 동안에는 대지에 축복을 내려 온갖 곡식이 잘 자라게 해주지만, 페르세포네가 떠나고 없는 동안에는 대지에 축복을 내려주지 않아 곡식이 자라나지 못한다고 한다. 즉 페르세포네가 봄에 지상으로 돌아와 8개월 동안 머물렀다가 겨울철인 4개월 동안은 하데스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는 페르세포네가 지하에 내려가는 것은 씨앗에서 싹이 터서 새 곡식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속에 묻혀야만 하는 자연 현상의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필자가 이 글의 첫 문장에서 ‘겨울에는 왜 농사를 지을 수 없느냐?’고 물었는데 이제 그 까닭을 납득할 수가 있을 것이다. ‘곡식의 어머니’이자 ‘어머니의 대지’인 데메테르 여신이 자기의 딸인 페르세포네가 자신의 곁을 떠나 있어 대지에 축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또 떠나 있던 페르세포네는 돌아올 것이며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면 축복을 내려 대지는 아연 활기를 찾게 되고 곡식과 채소와 과일이 풍성하게 맺힐 것이다. 하지만 내 곁을 떠나간 사람은 언제쯤 돌아오려나.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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