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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고인돌의 무게- 이슬기(문화체육부 기자)

  • 기사입력 : 2023-01-25 19: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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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로 추정되는 ‘김해 구산동 지석묘 훼손 사건’은 부실한 행정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해시는 문화재법과 절차를 가볍게 무시한 채 유적 정비 명목으로 돌을 옮기고 흙을 깎았다. 경남도도 문화재를 중(重)하게 생각하진 않은 모양이다. 감독 의무가 있지만 현장을 방문하고도 무허가 행위를 적발하지 못했다. 그 결과 고인돌 상석(대형 덮개돌) 주변부와 정비사업부지의 문화층이 크게 훼손됐다.

    ▼구산동 고인돌 상석 무게는 350t이다. 사람 수백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무게지만 넘어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가야 왕조 시작을 알려줄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라는 역사적 무게가 더해졌음에도 힘없이 기울었다. 실제 정비 과정에서 상석은 건드려지지 않았지만 그 가치를 설명해줄 기반들이 사라졌으니 상석이 넘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가사적 지정을 앞뒀던 매장문화재가 희뜩 뒤집어지는 판국에는, 지난 1971년 1400년 만에 발견됐지만 단 17시간에 발굴 조사를 끝낸 무령왕릉이 떠오른다. 기적에 가깝게 보존된 매장문화재를 졸속으로 처리한 최악의 발굴로 꼽힌다. 다만 이 현장을 발굴한 고고학자가 평생을 후회해 이때를 계기로 한국 고고학은 발굴 과정이 신중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발굴과 정비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번 김해 구산동 지석묘 정비 과정에서 토목공사가 앞서 50여년 전과 유사한 사태가 되풀이된 것이 아쉽다.

    ▼행정의 잘못이 분명하나 행정에만 책임을 묻는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건 감시하는 도민의 눈이 아닐까. 도민이 문화재의 존재와 가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어디든 문화재를 이렇게 쉬이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350t을 경남도민수로 나누면 약 100g 남짓. 작고 가벼운 관심이 오히려 큰 돌과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 믿는다.

    이슬기(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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