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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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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고성의 마애석불-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회장)

  • 기사입력 : 2023-02-08 19: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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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거류산 능선에는 집 한 채 크기만 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누가 새겼는지, 언제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받는 마애석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경주 남산의 석불이나 속리산의 석불을 닮은 듯도 하고 닮지 않은 듯도 한 이 석불은 거의 1000년 세월을 비바람에 씻겨 닳고 닳아 부처의 온화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돼 온 것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거산리 마을 뒷산 마애석불이 이 마을을 벗어나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2020년쯤이다. 언론을 통해 알게 된 후, 마애석불을 보기 위해 등산객이나 불자(佛子)들이 평일은 물론 휴일이 되면 줄을 잇곤 한다.

    거산리나 인근 감동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옛날 옛적부터 마애석불이 있는 주위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전언에 의하면 어느 젊은 스님이 속세를 등지고 이곳에 와서 부처를 만나기를 소원하여 이 바위에 마애석불을 새겼다고 전해온다. 당시 변변한 장비나 도구가 없었으므로 거의 맨손이나 진배없이 밤낮으로 작업을 했으며 큰 바위에 자신의 키 높이를 맞추고자 발밑에 돌을 쌓아서 작업을 하다가 어그러져 다친 적도 많았고 하루 일을 끝마치면 자신의 손에는 피멍이 지고 때로는 잘못하여 자신의 손등을 때려 피를 흘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를 거의 백일이 다 되었을 어느 날, 마애석불의 눈동자를 그려 넣을 때였다. 이제 마지막 한 번만 돌을 더 때리면 완성이 되는 그때였다. 멀쩡하던 여름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기가 한줄금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하늘이 말갛게 걷히고 마을 아래 바닷가 위로 무지개가 피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무지개 위를 부처님이 사푼사푼 걸어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스님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자신의 몸을 꼬집어 보았다. 아픈 느낌이 왔다. 꿈이 아니고 생생한 현실이었다.

    “부처님! 몽매에도 그립던 부처님! 이제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부처님!”

    젊은 스님은 눈물을 흘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얘야, 죽는다니 그 무슨 소리냐. 네가 날 보기를 그토록 열성을 바쳐 애원하였으니 내 어찌 너를 모른 채 하겠느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새겨듣고 부디 실천을 하여라.”

    “네. 부처님, 말씀하십시오.”

    “네가 바위에 나를 새겨 넣는 일도 좋은 일이지만 지금부터는 중생들의 마음에다 내 얼굴을 새겨 넣도록 하여라. 네가 새긴 내 얼굴이 중생들의 마음에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극락세계이니라,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우둔하고 아둔한 저에게 눈을 뜨게 해 주셨으니 지금부터 실천토록 하겠습니다.”

    젊은 스님은 입으로 중얼중얼 거리는 자신의 말소리에 소스라쳐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니 무지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부처님도 온데간데없었다.

    ‘아아, 내가 그토록 뵙고 싶던 부처님을 뵈었구나! 이제 여한이 없다. 그래, 부처님 말씀대로 중생들의 마음에다 부처님의 얼굴을 새기도록 해야겠구나.’ 하고 젊은 스님은 각오를 새롭게 다진 후 그는 이곳을 떠나 중생들이 사는 마을로 가서 부처님이 명하신 대로 실천하다가 훗날 성불하였다고 한다.

    그 후, 아이를 낳지 못한 이들과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는 이들, 무슨 사업을 하다 풀리지 않아 애를 먹는 이들, 가정에 액운이 있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곳에 와 마음을 크게 비우고 소원을 빌면 큰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주말이면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 뒷산의 마애석불을 찾는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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