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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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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단순한 일상, 명쾌한 생각-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3-02-15 19: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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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이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촉이 가늘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글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똑같은 만년필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여분으로 하나를 더 샀다. 그랬더니 처음 가졌던 만년필에 대한 살뜰함이 사라져 버렸다. 아는 스님에게 만년필 하나를 주고 난 후에야 소중한 감정을 되살릴 수 있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그 하나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에 익숙한 우리는 생각도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법정 스님은 이런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많이 가질수록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유는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집안에 물건이 많을수록 중요한 물건을 찾기가 힘들다. 해야 하는 일이 많을수록 일상은 바빠지고 정신은 산만해진다. 만남이 잦을수록 자기를 위한 시간은 줄어들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놓친다.

    남다른 생각을 해내는 사람은 생활이 단순한 경우가 많다. 철학자 칸트는 새벽 5시 기상, 7시~9시 학교강의, 9시~1시 집필, 1시~3시 30분 친구들과 점심 식사, 3시 30분 산책, 10시 취침이라는 패턴을 반복했다. 단 두 번 일과표를 어겼는데 한번은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한번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왜 이렇게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했을까? 단순함이 주는 명쾌함과 연구할 수 있는 시간 확보 때문이었다. 단순한 삶은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함은 물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시간도 확보해 준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스티브 잡스 등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들은 생활이 단순했다.

    단순한 일상을 꾸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잡다한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공허를 견디지 못한다. 시간이 비면 처음에는 좋다가도 점점 따분해지고 심지어 불안해진다.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만든다. 여유가 생기면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그것에 따라 일상을 재설계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라면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권한다. 예전에 좋아했고, 즐겼던 것을 떠올려보면 자기 성향을 알 수 있다. 기억할 것은 취미를 갖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뭔가 좋아지려면 그것을 잘 다룰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러자면 시간을 들여 살피고, 배우고, 익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이 생기면 삶이 훨씬 충만해진다.

    공간도 중요하다. 공간은 자기만의 개성과 문화를 펼치는 곳이다. 자기 공간을 가꾸는 것은 자신만의 색깔을 만드는 것과 같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없애고 아끼는 물건들을 잘 정리하면 훨씬 정돈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볼펜만 정리해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법이다. 정리는 창조적 배치다. 소모적인 만남도 줄일 필요가 있다. 에너지를 방전시키는 사람을 의무감으로 만나는 일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그러기 전에 ‘아니오’를 연습해보자.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을 정중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늘 ‘예’라고 하는 사람은 쉽게 보인다. 저 사람이 아니면 나를 만나줄 사람이 없을 모른다는 생각은 유아적이다. 만남을 정리하면 새로운 만남이 찾아온다.

    법정 스님은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욕망과 필요는 다르다. 욕망은 필요 이상의 것을 끌어와 삶을 복잡하게 한다. 택배 상자에서 꺼내 한번도 사용해보지도 않고 던져둔 기기와 옷들은 우리 삶을 어지럽게 할 뿐이다. ‘일상은 단순하게, 생각은 넉넉하게.’ 법정 스님에게 배우는 단순한 삶의 멋이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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