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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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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6) '전통의 개척' 성파스님

“남들이 예술이라 부를 뿐, 나에겐 삶이 예술”
10대 때 서예 시작… ‘옻칠 민화’ 새장르 개척
통일염원 담아 22년간 장경각·도자대장경 제작

  • 기사입력 : 2023-03-08 19: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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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 통도사에 주석한 성파(性坡)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제15대 종정(宗正)이다. 조계종 종정은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가진, 한국 불교계 최고 정신적 지도자로 불린다.

    1939년 합천에서 태어나 1960년 통도사로 출가하며 일평생 경남에서 살아온 그는 경남과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계의 큰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을 되짚어 보면 전통예술의 보존과 계승, 더 나아가 발전을 이루어 낸 참된 예술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통도사에 홍매화가 활짝 핀 지난 5일 서운암에 있는 성파스님의 작업실에서 '종정' 신분이 아닌, '경남 예술인'으로서 스님을 만나 말을 담아봤다.

    지난 5일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만난 성파스님./김용락 기자/
    지난 5일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만난 성파스님./김용락 기자/

    ◇'서예'로 시작한 예술 '옻칠'로 정점 찍다= 성파스님의 예술적 성과는 오랜 삶 속에서 열정적으로 채득하고 실천해 온 결과다. 그의 첫 예술 활동은 10대 시절 붓글씨를 연습하기 위해 시작했던 '서예'다. 붓을 잡은 그는 출가 이후 '사경'을 배웠다. 사경은 불경 속 글과 그림을 붓으로 옮겨 쓴 작품을 말한다.

    예술의 형태는 관심의 시선에 따라 확장했다. 198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개인전 '금니사경전'을 열었을 당시에는 고려시대 사경에 쓰이던 감지(紺紙, 검은빛이 도는 종이)를 직접 재현하겠다고 결심하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지에 쪽물을 들여 재현에 성공했고, 더 나아가 오늘날 오색찬란한 전통 천연염색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다.

    '옻칠'은 성파가 마침내 정점에 다다른 예술 분야다. 옻이 방수성과 내구성이 좋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공부는 1985년 통도사 주지를 그만두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사라져가는 옻칠문화를 복원시키고자 수년간 함양군 마천면 등 국내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옻칠 전문가에게 닥치는 대로 기술을 배웠다.

    "창원 다호리 고분군에서 발견된 옻칠 그릇은 2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외형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 옻칠 문화는 궁중과 사찰에서 계승돼 왔는데, 어느 순간 국내 사찰 중 옻칠을 직접 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서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2008년 사찰 내에 전국 유일의 칠방을 열며 배움의 결실을 맺게 됐다. 이후 옻칠 문화를 발전시켜 갔고, 2014년 옻칠을 물감으로 그린 민화를 전시회에 공개하며 '옻칠민화'라는 새로운 전통예술의 시작을 알렸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옻 물감'은 옻에 상처를 내면 흘러나오는 옻액에 석채, 흑연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들어진다. 이후 민화에 덧칠한 후 바깥 표면을 깎아내 속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색을 완성한다. '옻칠 민화'는 검은색으로 알려진 옻칠의 일반적인 개념을 깨고 빛깔의 스펙트럼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성파는 이외에도 전통미술인 '도예'와 민족 문학인 '시조'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1984년부터 성파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시조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성파시조문학대상으로 확대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에도 성파는 스스로를 예술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남들이 예술이라 부를 뿐이지, 스스로 예술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사람이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사람이 살면서 남기는 것이 문화와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양산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에 보관된 16만 도자대장경 모습./김용락 기자/
    지난 5일 양산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에 보관된 16만 도자대장경 모습./김용락 기자/

    ◇예술로 되살린 우리의 역사= 통도사 19암자 중 하나인 서운암의 꽃길을 쭉 올라가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옻칠 건물인 '장경각'이 있다. 900m² 규모의 건물은 단층, 목재, 도자기와까지 모두 옻칠을 한 것으로 2013년 성파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성파가 영원을 추구하며 장경각에 담은 것은 '16만 도자대장경'이다. 도자대장경은 900℃ 불로 초벌한 도판에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출본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새기고 유약을 바른 다음 구워낸 것이다. 성파스님은 다른 기술자를 두지 않고 승려 20여명과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1년간 경판을 제작했다.

    총 22년의 세월로 완성한 대작불사는 사전계획만 5년이 걸렸다. 1986년부터 좋은 흙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산청군 생초면에서 고령토를 공수해 왔고, 고품질의 도자 판을 만들기 위해 수백차례 실패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성파는 왜 16만 도자대장경을 만들려고 했을까.

    "우리나라 불교는 호국불교이기에 100년이 걸려도, 300년이 걸려도 해야만 했던 작업입니다. 700여년 전 대장경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원력을 이어 오늘날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추진했지요."

    장경각 앞마당에는 7000년 전 시작된 '최초의 한반도 미술'이 수중 속에 전시돼 있다. 50㎝ 깊이의 두 개의 수조 아래 심연 같은 어둠 속에서 각기 다른 빛을 내는 자개 작품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0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과 빼닮았다.

    성파는 지난 2018년부터 3년간 두 작품을 만들었다. 삼베에 옻칠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고 덧붙여 원본 크기의 흑색 판을 만들었다. 이후 고유의 나전칠기 기법을 이용해 동물의 형상을 만들고 재차 옻칠했다. 이 옻칠은 상시 수중 전시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수중 전시를 한 깊은 뜻이 있는지 성파스님에게 물었더니 '재미'라는 단어가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서 했습니다. (수중전시를) 해보고 싶어도 옻칠을 안 하면 할 수 없는 거고, 아무도 안 해본 것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수중전은 계속할 거고, 다른 작품으로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들 작품들은 오늘날 미술계에서 전통의 답습에 머무르지 않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첨단 기술을 접목한 종합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서운암 곳곳에는 성파가 수십년간 만들어 온 문화와 예술이 있다. 서운암 입구부터 시작되는 5000개가 넘는 장독대, 법당에 모셔진 '삼천불전'이라 불리는 3000개의 도자불상, 4만평에 달하는 야생화 정원은 모두 성파의 작품이다.

    지난 5일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만난 성파스님./김용락 기자/
    지난 5일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만난 성파스님./김용락 기자/

    ◇"전통예술, 세계에 내놓아야 할 선진문화"= 한지와 한국화에 대해 질문하자 성파는 "전통 문화예술은 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선진문화이기에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10일 통도사에서 열린 '한지의 날 제정 선포식'에서 성파는 이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당시 그는 직접 제작한 길이 24m의 전통 한지에 친필로 '세계 제일 우리 한지의 날'이라는 경축 휘호를 써 내려가며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등재를 염원했다.

    올해는 가을쯤 '한국화의 날'을 선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한국 전통미술은 수묵화, 수묵담채화, 채색화, 민화, 불화 등 재료와 특징에 따라 구분할 뿐 한국화라는 명칭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게 성파의 설명이다. 성파가 과거부터 민화를 소개할 때 한국화라는 명칭을 강조해 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동양화라는 큰 틀에서 중국은 중국화를, 일본은 일본화를 세계미술계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동양화의 하나로 작품을 들고 나가니 외부에서는 중국과 별반 차이를 못 느끼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의 모든 전통 미술을 한국화라 명칭하고 세계화에 나서자는 생각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민화라도 한국화라 부르고 있다. 민화는 순수 우리나라 민족의 머리와 손에서, 우리 풍속과 정서를 표현한 한국적인 장르이지 않냐."

    성파에게 앞서 언급한 '미래지향적'의 의미를 되물었다. "모든 것들은 시대를 맞추고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말의 의미를 쫓는 침묵이 이어지자 성파가 첨언했다. "가만히 있으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후퇴다.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결국 쇠퇴하는 길이다. 전통 문화예술도 머물지 않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예술적 가치가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경남도민과 경남 예술인들에 대한 격언을 요청했다. 성파는 "남에게 어떻게 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며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신념을 짧게 말했다.

    "항상 시작이라 생각한다. 현재가 있고, 1초만 지나도 1초 전은 과거가 된다. 시간은 머물지 않기에 우리는 항상 매 순간마다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성파의 말은 종정 취임법회 때의 법문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성파의 법문은 다음과 같다. "초발심(처음)으로 돌아가자, 이때까지 있었던 것을 싹 지워버리고 새로 출발하면 우리 마음과 가정, 사회, 국가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찰나생멸(刹那生滅)이라는 말이 있다. 찰나의 순간의 '찰나'에 영원이 있고, 영원 속에 찰나가 있다는 뜻이다. 생(生)과 멸(滅)이 있는 유한한 삶 속, 매 찰나마다 시작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신적 영원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가치와 이유를 찾지 않을까.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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