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2월 23일 (금)
전체메뉴

[경남 예술인을 담다] (14)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 수상’ 천원식 조각가

통영 섬마을 소년 ‘최고 미술인’ 꿈 조각하다

  • 기사입력 : 2023-12-05 19:32:43
  •   
  • “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미술인상 본상은 대부분 원로급이 받으시는, 굉장히 명예로운 상이니까 받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5일 대한민국 미술인의 날 행사에서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을 수상한 천원식(55) 조각가가 시상을 앞둔 지난달 27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얼떨떨한 소감을 전했다. 한국 미술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지만 아직도 자신은 예술을 갈증했던 소년 같다. 변화를 멈추지 않는 그의 작품세계와 지역 예술계에서 종횡무진했던 무수한 발자취는 그 갈증의 흔적이다.


    고교 때 미술 시작해 미대 합격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부모님 극구 반대
    할머니 쌈짓돈 내줘 극적으로 대학 등록
    개인전 15회… 매번 새로운 작품 선보여
    예술단체 회장 맡아 지역작가 전시 기획
    경남갤러리 개관 등 인프라 확대 큰 역할
    “새 작품으로 세상 만나는 조각가 될 것”


    천원식 조각가가 창원시 성산구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만든 작품 ‘천상의 선물-내 안의 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천원식 조각가가 창원시 성산구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만든 작품 ‘천상의 선물-내 안의 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예술가 그리던 소년의 꿈= 통영 사량도에서 태어난 천 작가는 6형제 중 첫째다. 그때는 맏형이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이른 나이에 돈을 버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런 운명이니’ 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학교 미술교사를 만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죽어도 미술이 하고 싶었다. 창원대학교 미술학부에 원서를 넣고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극렬했다.

    “다음 날까지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침 9시에 뜨는 배를 타야 했어요. 근데 부모님이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 되니 가지 마라’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내 인생이 이렇게 끝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저녁, 뒷산으로 올라간 천 작가는 세상이 떠나라 울다가 플래시를 들고 찾아온 엄마의 손길에 이끌려 겨우 밥상머리에 앉았다. 엄마는 아들에게 “담에 태어나거들랑 좋은 집에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것 다 해봐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을 포기한 천 작가는 방으로 돌아가 뜬눈으로 밤을 지냈다.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하자 사시나무 떨리듯 그의 온몸이 떨려왔다. 그런데 저 멀리서 하얀 인영이 보였다. 그의 할머니였다.

    “오늘 내가 대학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만원짜리 100장을 쌈지에 싸서 왔어요. ‘육지에 가서 성공해라’며 돈을 쥐여 줬죠. 그때 등록금이 40얼마였는데 50만원은 집에 두고, 나와서 무작정 배를 탔어요.” 그렇게 소년 천원식의 세상이 달라졌다.

    ◇심상의 다채로운 표현= 예술인을 꿈꾸던 통영의 소년은 창원에서 자리를 잡아 어느새 지역의 중견작가가 됐다. 이제까지 15번의 개인전을 펼친 천 작가의 작품은 모두 다채롭다. 공통된 것 없이 언제나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주제를 펼쳐보인다. 그것은 변화하는 심상이다. 천 작가는 “작품은 자신의 심상에서 나오는 그림자”라며 “심상은 늘 변화하는데 작품이 머무를 순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가장 의미가 큰 전시는 첫 번째 개인전과 10번째 개인전이다. 30대 초반의 첫 개인전은 오랫동안 잡아왔던 인체 작업에서 탈피해 새로운 세계로 내딛는 첫발이었다. 천 작가는 태풍에 쓰러진 나무뿌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나무 뿌리의 활용성과 신선함 때문이었다.

    열 번째 전시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석재를 주재료로 사용해 ‘천상의 선물’ 시리즈를 내놨다. ‘내면의 울림으로 표출된 인간의 정체성’을 표현해 조각가 천원식과 사람 천원식이 겪었던 슬럼프를 벗어나고 전시를 10회까지 이어온 자신의 성과와 열정을 보여줄 수 있었다.

    천원식 조각가가 창원시 성산구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스테인스레스 스틸을 재료로 만든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천원식 조각가가 창원시 성산구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스테인스레스 스틸을 재료로 만든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역 예술인으로서 사명 이뤄내= 천 작가의 족적에 있어 지역 예술계에 미친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천 작가는 창원미술협회, 경남미술협회, 경남전업미술가협회, 경남조각가협회 등에서 굵직한 직함을 맡아왔다. 경남조각가협회 회장 시절에는 처음으로 전국 유명 조각가와 지역 조각가들의 전시를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고, 경남전업미술가협회 회장일 때는 협회전으로는 전국 최초로 100호 이상 작품만 전시하는 ‘대작전’을 기획해 전국적인 ‘대작전 붐’을 일으켰다. 현재 서울 인사동에서 지역 예술가의 수도권 진출을 돕는 ‘경남갤러리’ 개관도 경남미술협회 지회장이었던 천 작가의 공로다. 천 작가는 그것이 지역 예술계에 속해 있는 자신의 ‘사명’이었다고 얘기했다.

    이런 행보는 천 작가가 예술적 업적과 예술 저변에 미친 공로 모두를 판단하는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을 수상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역 예술인으로서 ‘맡을 수 있는 자리’는 다 돌고 온 천 작가는 이제 오롯이 작가로서만 남아 있길 바란다.

    “아직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직함을 두고 권유하는데, 작가로서 소명을 다하고 싶어요. 저를 조각가로 기억해주길 바라고, 오롯이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힘이 닿을 때까지, 언제나 새로운 작품으로 세상과 만날 거예요.”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어태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