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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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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대한민국의 뉴 디자인, 일장춘몽인가- 이재달(전 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3-03-08 19: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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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에 읽었던 책을 서가에서 꺼내 읽는 즐거움도 색다르다. 당시의 느낌 그대로일 수 있고, 때로는 그때와 전혀 다른 감흥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 다시 손에 잡은 책이 2013년에 출간한 미국 출신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다. 저자는 자기 나라에 대한 외국의 높은 평가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인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면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사실을 외면하게 되면 선진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전략을 채택하지 못하고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국가전략에 안주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차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중·후진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면 한껏 자부심을 가져도 지나치지 않는다.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중진국에만 머문다는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이라는 용어가 있듯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중·후진국이었던 국가 중에서 2000년대까지 선진국으로 올라선 나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보다 못한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은 그 대표적인 나라라고 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자만심을 갖자거나 졸부처럼 우쭐대자는 것이 아니라, 임마뉴엘 박사의 고언처럼 우리 몸집에 맞는 옷을 입고, 이에 걸맞은 사고를 하자는 의도다. 우리가 걸친 옷이 선진국이 된 지금에도 맞는지 정치·행정적인 측면에서 화두를 던지고 싶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의회와 정당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중선거구제 도입 논의가 일고 있는데, 승자독식에 따른 정치 양극화와 지역 패권 정당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방행정을 감시하는 지방의회가 있는 마당에 굳이 ‘세비 먹는 하마’인 의원의 수를 지금처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또 수준 이하의 자질을 가진 의원을 걸러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후보 토론에서 완전히 밑천을 드러냈는데도 유력 정당의 후보여서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부형태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선진국으로 간주하는 나라 가운데는 우리나라와 미국만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미국은 연방국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역사적인 명분이라도 있다. 우리는 건국 이래 대통령 한 사람의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부단하게 경험해 왔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변화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다음, 행정 계층의 개혁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도-시(군)-동(읍,면), 또는 특별(광역)시-구-동의 다층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교통과 통신이 낙후된 예전에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道)를 7, 8개 시, 군을 합친 규모 정도로 쪼개고, 중간 단계인 도(道)의 시(군), 또는 특별(광역)시의 구(區)를 없애는 방안은 어떨까? 다층제는 행정 서비스를 떨어뜨리고 비효율성을 초래하며,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산청군과 함양군, 남원시, 구례군 등 지리산을 낀 몇 개 시, 군을 묶은 가칭 지리산도(道), 남해군과 하동군, 여수시, 광양시 등을 묶은 남해도(道) 등을 만들면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견이 오늘내일 당장 이뤄질 것이 아니란 점을 안다. 자신들의 밥그릇과 관련 있는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며, 또한 방대하고 복잡한 작업이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히 연구해서 선진국의 몸집에 맞는 정치·행정 체제를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봄날에 꾸는 한바탕 허황한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재달(전 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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