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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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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답례-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3-04-12 19: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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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년 만에 출간한 서적을 우편으로 발송하기 위해 봉투 작업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 책을 보내면 받는 사람이 반갑게 맞이해서 기쁘게 읽어줄까. 아니면 그냥 아무 곳에나 툭 던져 놓은 탓에 냄비 받침대로 쓰거나 바퀴벌레 잡는 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바닥의 면이 고르지 않아 삐걱거리는 장롱이나 식탁 모서리에 끼여 질식한 채 평생을 보낼지도 모른다. 사비로 출간한 책을 봉투까지 인쇄해서 일일이 도로명 주소를 찾아 쓰고 우체국에 가서 적지 않은 우편요금을 부담하며 보내는 일이다. 경비와 시간과 인력이 총동원되고 정성을 다하여 보내야 하는 일이니 그런 생각까지 드는 모양이다. 요즘 사람들은 연령을 초월하여 동영상을 가까이하고 문자 책을 멀리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에세이나 소설이라면 또 모를까 필자가 보내는 시집 같은 건 특정인을 제외하고는 더욱 외면을 받는 것 같다. 읽지 않은 책이 부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봉투도 뜯기지 않은 채 재활용품 박스와 함께 트럭에 실려 나가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씁쓸하다. 거기에 보낸 사람의 친필 사인까지 덩달아 딸려가니 참담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필자는 이미 몇 권의 시집을 출간해서 우편으로 발송한 경험이 있는데 시집을 보내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하게 잘 받았다고 전화나 문자로 답례를 보내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우선 답례를 받으면 시집을 읽고 읽지 않고를 떠나 일단은 무사히 잘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안도하고 보람을 느끼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시집이 우편사고 없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이사를 가고 없으면 수취인 불명으로 반환되니 확인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으니 그저 갑갑한 마을을 금할 수 없다. 어쩌다가 당사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도 잘 받았다는 말이 없으면 물어보게 되는데 그때서야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난감한 심정으로 다시 보내 준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받은 사람이 잘 받았다고 문자 한 통이라도 날려주면 오히려 보낸 사람이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굳이 인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테니 그 정도 성의는 답례라고 생각해서 보여주는 게 보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책을 보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필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사실 작가 입장에서 출간은 산고와 같아서 그 산물을 보낸다는 것은 애지중지하며 다 키운 자식을 남에게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출타한 자식이 가야 할 곳에 안전하게 가서 제자리 잡고 사랑받으며 무탈하게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간에 길을 잃거나 훼손되고 가서도 제자릴 잡지 못하고 구박이나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굳이 책이 아니라 어떤 물건이든 그것을 보낼 때는 정성을 다하니 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따라간다는 사실을 받는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우편으로 발송할 책들을 박스에 차곡차곡 싣고 우체국에 들렀는데 택배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채 트럭으로 옮겨 실리고 있었다. 쌀가마니며 과일 박스 스티로폼 박스 모양도 종류도 제각각 다양했다. 다들 안전하게 잘 도착해서 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전하고 받는 사람의 사랑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잘 받았다고 보내줘서 고맙다고 서로 주고받는 마음들이 4월 뜨락의 수국 위로 내려앉는 햇살처럼 따스했으면 좋겠다. 전자저울에 서적을 올릴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내 새끼가 ‘시집 잘 가서 잘 살게요’ 하고 인사하는 내 새끼 인사 같아 숙연했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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