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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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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폐간과 창간 사이의 봄을 읽다- 임성구((사)한국문인협회시조분과 회장)

  • 기사입력 : 2023-04-26 20: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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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두에서 더 깊은 초록으로 건너가는 사월 끝자락이다. 두 눈을 두껍게 감았다가, 살며시 실눈으로 뜨며 지나간 풍경을 짚어본다. 몇 며칠 전 상춘객을 불러 모으던 벚꽃이 눈처럼 내릴 때, 새봄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과 함께 추억의 사진 속으로 사라졌다. 며칠 전 조팝꽃도 하얗게 내 마음속으로 와서는, 봄바람에 낭창낭창 하늘거리며 애간장을 태우더니 사라졌다. 몇 초 전에 핀 어느 집 우물가에 앵두꽃과 수선화가 지워졌고, 기후환경의 영향으로 약간 일찍 핀 목단까지 지워졌다. 크게 눈을 떠보니 오월에나 펴야 할 아카시아꽃, 오동꽃이 진한 향기로 와있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한두 달이 삽시간에 지나갔다. 내 곁에 먼저 와서 찰싹 붙어있던 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한낮 꿈에 지나지 않은 일장춘몽의 봄은, 그렇게 뉘엿뉘엿 지기도 하고 피기도 한다. 꽃들이 떨어지는 것은 이별하는 것이고, 이별하는 것은 아쉽게 지워지는 것이다.

    2004년 11월에 창간하여 ‘불 속의 연꽃인 시조, 불생불명의 마음자리’로 뜨겁게 꽃 피우고, 20여 년 가까이 우리 지역은 물론 중앙문단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아온 반연간 시조 전문지 〈화중련〉 이 올봄에 폐간의 절차를 밝았다. 그동안 〈화중련〉은 우리 지역 작가에게 지면을 할애해 창작의 폭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하는 주요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시조시인들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동안 통도사 서운암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조건 없는 봉사와 애정을 쏟으며 문예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김복근 편집주간과 편집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필진들에게 원고료 대신 제공하던 서운암 된장과 고추장도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흐뭇함의 선물이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꽃들은 제 이름에 버금가는 상징적인 열매로 내일의 더 뜨거운 선물을 기약한다. 시조단의 영원불멸의 꽃인 줄만 알았던 〈화중련〉이라는 꽃은 졌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시조 중심의 계간지 ‘모자람 없이 충분한’이란 뜻을 가진 〈가히〉가 창간되었다. 미래를 열어가는 좋은 문예지를 위해 나름 좋은 필진을 선호하고 좋은 작품을 수록하겠다는 발행인의 포부가 크므로 획기적인 기획이 돋보이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우려가 되는 점은, 요즘 젊은 시조시인 몇몇은 율격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시 형태로 작품을 써놓고 시조라고 우기며 대수롭지 않게 발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사설시조에서 그러한 경향이 많이 발생하곤 한다. 자유시와 정형시의 정체성을 잃은 작품은 시조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평시조든, 사설시조든, 시조만이 가지는 특유의 리듬을 지키면서 창작에 전념해야 한다.

    많은 시조시인들이 좋은 시조를 쓰고자 노력하는 것은, 천년을 이어온 국시(國詩)인 시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뭉클하거나, 해학이 넘치거나, 국민 정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는 시조가 좋은 시조이며,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엔 시조의 정통성과 서정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시조’는 어떠한 행갈이를 하든 간에 두 음보씩 꼭 읽어야 한다. 시조는 율격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시적 발상과 표현력을 키워 음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정통성을 가지면서 시적 감각도 뛰어난 시조 쓰기란 갈수록 어렵다. 절제의 미학, 조사 한 자도 꼼꼼히 생각하는 한 글자의 낙차가 바로 명시조를 만든다. 그러기에 명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은, 깊은 맛과 멋이 온전히 살아 있어 독특한 한국의 정형시가 되는 것이다. 한국 문학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온다면 국격을 높이는 국민의 경사다. 꽃들이 폐간과 창간을 거듭하는 이 봄날, 온 국민이 민족 문학에 더 깊은 애정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임성구((사)한국문인협회시조분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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