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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누구나 맨발로 자갈길을 걸을 때가 있다- 김문주 아동문학가·소설가(1995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 기사입력 : 2023-06-08 19: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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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다 보면 간혹 맨발로 땅을 걷는 듯할 때가 있다. 남들은 좋은 신을 신고 편한 길을 걷는데 나만 맨발로 자갈길을 걷는 것 같다. 발이 아파도 소리 내지 못하고 생채기가 나도 손을 내저으며 괜찮은 척한다. 무슨 투사나 되는 듯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의 길을 간다’고 선언하기도 하지만,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만다. 나 역시 글쟁이로 살려다 보니 그런 좌절을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이십 대 후반인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모든 것이 모자라는 듯한 현실 속에서 젊은 날의 방황이 신춘문예의 당선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글쟁이 삶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 시절 나는 가난한 신혼이었고 그 후 오랫동안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밥벌이를 해야 했다. 틈틈이 소설을 써서 중앙에 보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시골에 맡긴 내 아이를 소재로 해서 장편동화를 썼고, 그 작품이 문학사상사 장편동화 공모전에 당선했다. 장편동화를 꾸준히 내면서 나는 부족하게나마 작가의 길을 이어갔다.

    몇 년 전부터 전업으로 글을 쓰면서 장편 역사소설도 몇 권 내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힘겹고 우매하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글 잘 쓰는 작가들을 질투했고, 글보다 다른 활동으로 유명한 문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방에 있어서 손해 본다고 생각했고, 중앙의 작가들이 자기들만의 성을 쌓아놓고 지방 문인들은 끼워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도 많았다.

    그런데, 중앙에서 제법 평판 있는 시인 작가들도 나와 비슷한 자괴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다른 작가를 졸렬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고, 그들 역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 라는 말은,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을 향한 반항이다.

    나는 첫 장편동화부터 시작해서 작년에 나온 장편소설까지 모두 16권의 책을 냈지만, 베스트셀러라고 할만한 책은 없다. 졸작을 써나가는 동안 재주가 부족함을 스스로 깨달았고, 세상을 보는 편견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나는 이제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문학은 인생의 표현이니, 어떤 문학 작품도 훌륭한 인생보다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경남신문 신춘문예 심사에 두어 번 참여했다.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의 감격에 찬 수상 소감을 들으며 나는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나의 시상식 때를 떠올렸다. 문학이 뭔지도 몰랐던 풋내기 때의 설렘과 용기가 내 자갈길의 시발점이었다.

    글이 밥이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문학을 선택하였으니 그 길을 꿋꿋이 가는 수밖에 없다. 걷다 보니 발에 굳은살이 박여 자갈길도 제법 걸을 만하다. 세상의 인정을 받으면 즐거울 일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해도 다른 길은 쳐다보지 않는다. 가다 보면 보람된 날도 있을 것이고 아니어도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김문주 아동문학가·소설가(1995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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