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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명령 거부권 -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박재희(석천학당 원장)

  • 기사입력 : 2023-06-15 20: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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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권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가? 부당한 지시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작게는 기업과 사회가 부패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라면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을 살리고, 미래의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터에 나간 장군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 전방의 현장 상황도 모르고 후방에 앉아 측근들의 편협한 의견을 듣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군주에 대하여 현장의 장군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을 경우가 있다.’ 이순신 장군은 무모하게 돌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후방 군주의 지나친 간섭과 부당한 지시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기〉에는 제(齊)나라 대장군 사마양저(司馬穰저)가 왕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쟁터에 군대가 출정하던 날, 왕이 총애하는 신하 장고(張賈)라는 사람이 군율을 어기고 전횡을 일삼았다. 사마양저는 군율에 따라 참형을 명령하였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사자를 보내 측근인 장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였으나 양저는 아무리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부당한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장고의 목을 베었다. 그는 군율을 어긴 제나라 왕의 측근 장고의 죄를 물어 처형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장군은 전장에서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임무를 맡아 전쟁터에 나선 장군이 잊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장군은 임명된 날에 자신의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한다. 둘째 전장에서 군법을 한 번 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부모도 잊어버려야 한다. 셋째 전쟁터에서 북을 치며 적진을 향해 돌격할 때는 자신의 몸조차 잊어버려야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조국과 임무에 충성한다는 사마양저 장군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부대를 이끌었던 양저는 병사들의 강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사기가 충천한 제나라 군대는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고 승리한 군대가 되어 제나라 수도로 돌아왔다.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다는 철학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쉬우나 실행에 옮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공권력에 대하여 부당한 권력의 행사에 반기를 드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친구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충고하면 친구와 이별을 맞이할 수 있고, 직장상사의 부당함을 거부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부당한 권력에 대하여 저항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옳은 일에 대하여 자신의 자리와 목숨을 걸고 지켜 온 사람들에 의하여 더욱 발전하였으니, 내가 비록 어떤 이유로 옳은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옳은 길을 선택한 사람에 대하여 비난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부당함에 눈을 감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고, 소신을 가지고 거부하며 저항해야 할 때도 있다. 어느 결정이든 다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으니 어느 한편에서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목숨을 걸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박재희(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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