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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개미를 밟지 마세요- 김태경 동화작가(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 기사입력 : 2023-08-17 19: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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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부터였을까, 개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땅을 주시하며 걷는 것도 아닌데 개미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도 이렇게 개미가 신기했을까? 모르겠다. 마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작은 우주를 마주한 듯 개미의 존재에 빠져들었다. 일부러 과자 부스러기를 땅에 뿌리고 개미의 관심을 끌려고도 한다. 그 작은 생명체의 질서와 위력에 감탄할 뿐이다.

    땅에 개미가 있으면 밟지 않으려고 한다. 두 눈이 잽싸게 개미를 발견, 두 발은 기꺼이 개미의 길을 피해 움직인다. 개미가 눈에 들어온 날부터 시작된, 어쩌면 괴짜처럼 보이는 나만의 습관이다.

    개미를 밟지 말자는 지극히 사적인 나의 캠페인은 남편에게도 전달되었다. 공원에서 아이의 유모차를 끌 때도 최대한 개미를 피하려고 했다. 극성일지 모르는 나의 행동에 남편은 황당한 표정을 지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나와 같이 행동해줄 뿐이다.

    4살 딸아이와 함께하는 어린이집 하원이 요즘 조금 특별해졌다. 밖으로 나온 딸아이는 제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바닥에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깨알처럼 작은 개미를 기어코 찾아내, “엄마, 개미 어디로 가?”라고 묻는다. 딸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개미가 이동 중이다. “응, 개미가 집으로 돌아가나 봐.” 그럼 딸아이가 다시 묻는다. “왜 집으로 가?” “가족을 만나려고 열심히 가고 있나 봐.” 나의 대답에 딸아이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족, 집. 딸아이도 느끼는 따스한 단어. 안녕을 기원하며 개미를 향해 작은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준다.

    오래전, 고등학교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다. 대학캠퍼스를 걸어가는데 한 남학생이 웅덩이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단다.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나뭇잎으로 웅덩이에 빠진 개미 한 마리를 건져내고 있었단다. 생의 의지를 가진 모든 존재에게 경의와 감탄할 수 있는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 분명하다. 당시 내가 이 친구의 이야기에 어떤 말을 했을까? 분명한 건 친구의 이야기에서 흘러나온 선한 기운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시금 이 선한 일화를 전달하곤 한다.

    나와 남편의 행동을 보고 개미를 밟지 않으려는 딸아이를 본다. 딸아이의 행동이 누군가의 눈에는 하찮아 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딸아이가 끝까지 개미를 밟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작디작은 생명도 늘 우리 곁에 공존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면 좋겠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 그 너머를 궁구할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길 바란다.

    생명의 생사(生死), 사소한 주의로 생(生)이 이어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개미를 밟지 않을 것이다. 개미가 가야 할 종착지, 그 여정을 관조(觀照)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웅덩이에 빠진 개미를 건져주던 남학생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 남자의 아이도 웅덩이에 빠진 개미를 구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싶다.

    김태경 동화작가(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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