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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졸부증후군- 정희숙 아동문학가(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 기사입력 : 2023-08-31 19: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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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에 팔용산으로 향했다. 비가 온 뒷날이라 하늘도 개울물도 맑았다. 마음도 상쾌했다. 들뜬 기분으로 산을 올랐다. 넓은 길에 경사가 완만하다. 행인들의 발길로 반질반질하게 다져진 곳도 있고 몇 사람 다닐 만큼에는 잡풀도 거의 없다. 그런데 초입부터 야자매트가 깔려 있다. 직업인들의 생계를 위한 길도 아니고 등산화 신고 다니는 길에 야자매트라니. 졸부증후군 같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사람이 돈 쓸 줄 몰라 일탈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돈을 밟으며 걷는 기분이다. 잘 사는 나라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혈세 낭비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때부터 수입 방부목 계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니 이제 가는 곳마다 야자매트가 유행이다. 복지정책이 등산길까지 확대될 정도의 나라 발전은 반갑다. 맨발로 걷기에도 좋겠다. 하지만 혈세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갈수록 확대되는 복지정책 앞에서 다음 세대들이 떠안게 될 세금부담을 생각해야 하리라. 지금 우리의 자녀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건 경제적인 어려움 탓이 클 것이다. 미끄럼 방지를 위한 일이겠지만 낡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너덜너덜한 야자매트의 오라기에 걸려 엎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미끄럼 예방은 등산객 개개인이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미끄러우면 고무신 신고 갈 길도 등산화 챙겨 신기 마련이다. 재수 없거나 방심하면 탄탄대로에서도 미끄러질 수 있다. 한번 편안함에 길들면 다시는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폭신폭신함이 당장은 편하겠지만 무릎 건강에도 해롭단다. 일 년도 안 됐는데 벌써 흙더미에 파묻힌 곳도 있다. 이런 곳까지 예산을 투입하려면 끝도 한도 없다. 이전처럼 나무토막으로 층계를 만드는 등 부분적인 시설로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후진국 제품이라 값도 싸고 그 나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도 있다. 이런 일로 후진국을 생각할 계제가 아니다. 우리 앞가림이 급선무다. 나랏돈도 여유로울 때부터 아껴야 한다. 90년대 초반에도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린다”는 외국인들의 우려가 결국 외환위기로 이어진 뼈아픈 역사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 등 여러 이유로 세계 경제가 어렵다. 젊은이들이 세금 부담 없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30대 중반의 남성에 따르면 또래끼리 지하철 무임승차하는 노인을 일컬어 ‘틀딱’이라고 한단다. 틀니 딱딱거리며 교통혼잡을 부추긴다는 불만에서 나온 말이란다. 참 듣기 민망하다. 단순한 노인 비하가 아니라니 세금부담과 무관치 않다. 젊은이들의 원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과잉복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을 되도록 줄일 일이다.

    기분 좋게 산에 갔다가 괜한 번뇌만 안고 돌아왔다.

    정희숙 아동문학가(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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