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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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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사진의 힘- 주향숙(시인)

  • 기사입력 : 2023-09-21 19: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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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사진 속에는 사람이 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사진 속 인물들이 말을 걸어온다. 할아버지, 할머니, 동네 어르신들……. 한 번도 보지 못한 옛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세시풍속을 즐기며 온 동네가 들썩인다. 꽹과리를 치고 뿔피리를 분다.

    시어머니는 둘째 형님의 손을 잡고 함박웃음을 웃고 계시고, 작은아들 호와 조카 구는 여섯 살 위인 큰형 진을 우러러 바라보고 있다. 무슨 재미난 모의라도 하는 모양이다. 십오 년 전, 여행지 숙소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남편이 수동카메라로 찍었다. 사진 속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너무 고와 눈이 시렸다.

    사진 속에는 행복이 담겼다. 어머니는 정정하셨고, 아이들은 걱정이 없었고, 우리 부부는 젊었다. 젊다는 것은 무한한 에너지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에너지는 발산되어야 했고, 우리는 그만큼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살았다.

    이제 청년이 된 아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인생의 길 위에서, 각자 자기 앞의 생을 좇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큰아들 진은 취업 준비로, 작은아들 호는 임용고시 준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조카 구는 군 복무 중이다. 얼굴엔 그늘이 지고 웃음이 줄었다.

    한때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YOLO’ 열풍이 불었다.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사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인생은 이어진다.

    오래된 것들은 이상한 힘이 있다. 이미 사라진 것들을 다시 호명하곤 했다. 나의 첫 자동차 아반떼, 삼십 년 된 가죽장갑. 우리 부부가 결혼 준비를 하며 장만한 생애 첫차였고, 남편이 결혼 첫해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준 갈색 가죽장갑이었다. 사랑이었다. 인생의 크고 작은 파도에도 내가 지금 이렇게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사람들, 그리고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없을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긴 생을 함께 한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혼자일 때보다 가족과 있어 더 좋았다. 처음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렸던 순간의 짜릿함. 그 아이들이 자라서 학생이 되고, 운동장에서 이를 악물고 달리기를 하고,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아득하기도 하다. 아이가 아플 때는 새벽녘에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쫓아다니기 바빴다. 그러나 그때는 젊었고, 아이들이 그저 좋아 나를 내어 주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십오 년째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오랜 시간 서로를 지키는 일이 누구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성실함으로 쌓은, 저마다의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기도한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마라/ 생각대로 살아라, 라는 말을/ 어디서 읽었다./ 사는 대로 생각하면/ 지금 사는 것처럼 살게 된다./ (…) /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택,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될까’ 부분. 시인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요즘 나는 할머니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의 아이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면 꼬물거리는 아가의 손을 잡고 채송화 꽃밭을 돌보고, 예쁜 동화를 읽어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주향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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