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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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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밥-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3-10-04 19: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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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모든 줄은 밥줄이고 모든 길은 밥통 쪽으로 향한다. 밥이 없으면 죽는다. 빵만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필자가 말하는 밥은 식량이니 빵도 밥이다. 먹지 않고 살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잘 먹든 못 먹든, 적게 먹든 넉넉하게 먹든, 좋은 걸 먹든 나쁜 걸 먹든 먹어야 산다. 사람들은 먹기 위하여 일하고 더 잘 먹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먹기 위해 경상도 말로 쎄빠지게 일한다. 밤잠 설쳐가며 몸을 혹사시켜 가며 말이다. 세상에 가장 좋은 냄새는 밥 냄새이며 강한 힘은 밥심이고 가장 비싼 가격은 밥값이다. 밥값을 제대로 못 하면 밥값도 못하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전락하여 밥상 대신 지탄을 바가지로 받고 욕을 대접으로 얻어먹는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정의는 밥과 연관되어 결정된다.

    밥값 못하면 어리석은 인간이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 한심하고 불쌍한 인간이다. 좋은 사람은 밥 잘 사주는 인간이고 재수 없는 사람은 밥맛 없는 인간이다. 깐죽대고 얄미운 놈은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얻는 인간이고 못된 짓 한 놈은 그 밥에 재 뿌리는 인간이다. 대부분 어리석은 인간을 부를 때는 성이 밥이고 이름이 통이다. 그놈에게 으름장을 놓을 때는 국물도 없다고 하고 그놈을 감옥에 처넣고 싶으면 콩밥 먹인다고 한다. 인간끼리 가장 흔한 인사는 밥 먹었느냐이고 아픈 사람에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는 뭘 좀 먹어야지이다. 돈 되는 일을 하면 밥값 톡톡히 했다고 하고 영양가 없는 일에 매달리면 그게 밥 먹여 주느냐고 핀잔을 준다. 일이 좀 심각한 상황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밥 먹자고 하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비아냥거린다. 사람 비꼬기에 총체적으로 쓰이는 말이 밥만 잘 먹더라이다. 밥만 잘 먹는다는 건 밥 먹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형편없다는 얘기다.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결국 밥과 통한다. 밥만 먹고 어찌 사냐고 고고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열흘만 굶겼다가 들판에 내놓아 봐라. 잡풀도 뜯어 먹고 무당벌레도 잡아먹는다. 고고함이라는 명찰도 배 부를 때 달고 부려볼 수 있는 여유에 불과하다. 그러니 밥을 못 먹고 무슨 너스레를 떨 수 있는가. 생일날 잘 먹기 위해 열흘 굶으면 죽는다. 밥 먹여 주는 세상이 살 맛 나는 세상이다. 이 지구상 어느 누구도 죽을 때는 결국 못 먹어 죽었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정직하게 정리해 보겠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살고 먹으려고 일하고 못 먹으면 죽으니 밥줄에 목을 매고 산다. 동의하시는가.

    부와 명예도 밥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富는 밥이란 바탕 위에 돋보이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고 명예는 밥심으로 칠해 찰지고 보기도 좋을 뿐더러 빛을 내는 질감이다. 그것을 감상할 수 있는 정서는 배 부름 뒤에나 가능하다. 불편한 척 동의하시는가. 이제 동의 따위는 구하지 않고 필자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

    지금 세상에 밥값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기 밥을 두고 남의 밥을 뺏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자기가 먹지 못할 밥은 밥그릇채 엎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장 치열한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며 가장 염장 내지르는 일도 밥그릇 빼앗기는 일이다. 밥은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다. 밥은 숭고하고 거룩하다. 함부로 씹거나 뱉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밥 놓고 장난도 치지 말고 너스레도 떨지 말고 밥도 못 먹던 시절을 잊지도 말라.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해서라도 밥값 좀 하며 살자. 밥값 하는 게 그리 거창한 일만은 아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며 남 탓 이전에 나를 탓하고 양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분수를 알고 선하게 살며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겸손으로 나를 굽히는 일이며 먼저 다가가 손을 잡고 화해와 소통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밥값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며 밥값만 제대로 하면 잘 사는 것이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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