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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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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내 인생의 책들- 유영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3-10-05 1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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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어릴 때 공부보다 노는 걸 즐겨 하던 아이였다. 학교 갔다 오면 책가방은 마루에 던져놓고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동네 아이들과 골목을 휘저으며 해가 저물 때까지 놀다가 엄마가 부르면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새로운 글자 익히는 일에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책이 몇 권 없었고, 동화책은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학교 가는 걸 꽤 좋아했다. 교실 복도 끝에 학급 문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 꽂힌 책은 모조리 꺼내 읽었고, 새로운 책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읽곤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 건 아니었지만, 아는 즐거움 또한 짜릿하고 근사한 놀이라는 걸 그때 깨우쳤던 것 같다.

    중학생 땐 엄마를 졸라 할부로 한국단편문학대계를 산 적이 있다. 모두 10권으로 된 전집이었는데, 그 책들에는 국어책에 나왔던 소나기를 비롯해, 당시 TV문학관에 방송되던 작품들이 거의 다 실려 있었다.

    소나기, 메밀꽃 필 무렵, 백치 아다다, 발가락이 닮았다, 화수분, 운수 좋은 날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으며 나는 한껏 문학의 깊고 중후한 멋에 빠졌다. 심오한 문학가들만의 세계에 나 혼자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은 착각에 젖어 살았다. 이맘때 한창 핀 금목서 향기에 취한 어느 날 저녁엔 절로 떠오른 시상을 벽에다 개발새발 적었던 적도 있다. 세로 읽기로 인쇄된 그 책들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20대 때에는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에 흠뻑 반했다. 당시 배낭여행 붐이 한창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작가의 삶과 여행기가 어찌나 동경이 되던지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몇 년 뒤 어느 해, 누군가가 내게 별자리 신화와 관련된 책을 선물로 주었다. 그림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그 책은 난데없이 내게 그림책 작가의 꿈을 꾸게 했다.

    그때 나는 한없이 초라했다. 잘하는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다. 그런 내가 그림책 작가가 된다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 같았다. 작화가의 개성 넘치는 그림도 알아보지 못하는 까막눈이었지만, 무슨 자신감에서였는지 그때부터 수채화 학원, 일러스트 학원을 수년간 다니면서 온갖 열정을 쏟아부었다. 결론적으로 그 책은 내게 그림책 작가에서 동화작가의 길로 인도해 준 시발점이 되었다.

    어릴 땐 나조차도 내가 동화작가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책 한 권을 만난 뒤 이 길로 들어선 지금이 신기하기만 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변곡점엔 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은사님께 받은 책 제목을 본 순간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세계적인 명사들의 인생을 바꾼 책에 대한 에세이였다. 운명처럼 만난 책 한 권이 그네들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읽다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있는지 모른다. 혹시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은 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 손가락만 까딱해도 된다. 핸드폰 속 인터넷 서점은 하루 만에 책을 집 앞으로 배송해 주니까.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유영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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