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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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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야구장에서- 조경숙(수필가)

  • 기사입력 : 2023-10-19 19: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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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장의 열기가 뜨겁다. 내 인생에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열렬한 응원을 받은 적이 있을까. 타석의 선수를 위한 응원이 시작된다. 약속이나 한 듯 관중은 일어나서 열광한다. 전광판에는 선수만의 고유한 응원 구호가 짧은 노래가 되어 타자에게 집중하게 한다.

    추석 전날, 마산야구장에서 지역 구단 NC와 기아팀의 경기가 열렸다. 추석 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중석은 꽉 찼다. 젊은 친구들과 세대를 달리한 가족단위가 눈에 많이 띈다. 나 또한 서울에 거주하는 아들식구가 내려와 함께 관람을 나왔다.

    차례음식은 미리 간소하게 해두었고 도착하자마자 경기장을 달려온 것이다. 우리는 응원구단의 야구복으로 갈아입고 관중의 함성에 목소리를 보탰다.

    손자는 야구광인 아들의 영향력일까. 초등학교 입학 후 리틀 야구단에 발을 디뎠다. 가끔씩 보내오는 사진에는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볼 위로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진지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내 손자라 그런지 공을 응시하는 눈빛 표정과 방망이와 장갑을 잡은 품새가 웬만한 선수 버금간다. 손자는 자신을 ‘승요’라고 한다. 승요는 승리의 요정이란 줄임 말이다. 승요인 손자 때문일까. NC는 무려 18:3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이 현장에서 응원하면 항상 이겼다는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다. 패배의 언덕에서 고배를 마실 일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경기의 규칙을 잘 몰라 지겹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은 상관없다. 가족들과 있다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단지 홈런은 어떤 딴지도 걸지 못하게 시원한 점수를 낸다는 것, 슬쩍 밀어내는 번트나 상대의 허술한 점을 이용해 몰래 달려가서 베이스를 점거하는 도루 정도이다. 야구는 속임수라는 지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수긍도 했던 것이다. 아마 예측할 수 없는 투수의 변화구나 도루 번트 같은 데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인생도 멀리 내다보며 조밀한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지만 가끔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수이지 않던가.

    점수 차이가 날수록 관중은 똘똘 뭉친 똬리처럼 하나가 된다. 응원은 야박하리만큼 홈 구단선수에 맞춰져 있다. 경기의 한 회가 끝나는 짧은 시간에도 전광판에는 이벤트가 열린다. 좌석번호를 뽑거나 카메라에 비친 다양한 표정을 선정해 선물을 주며 선남선녀도 이어준다. 이들에게 보내는 박수와 환호는 야구장의 또 다른 묘미다.

    남편도 어느 때보다 신이 났다. 누구 명령에 이렇게 즉각적이었을까. 통닭과 응원용 봉을 사 오는 등 관람보다 손자·손녀의 욕구를 미리 점쳐 사다 나르기에 바쁘다. 언제 이런 기회가 있었는가. 매년 차례 음식 준비로 기름 냄새에 젖어 겨우 저녁 늦게 되어서야 얼굴 마주하고 튀김과 맥주 한두 캔으로 서로의 긴 안부를 묻지 않았던가.

    경기는 막바지, 더 이상 점수 올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대 선수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그럼에도 상대 응원단은 흔들림 없이 선수를 응원한다. 이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격려이고 최선을 다했다는 다독임이다. 자신의 실패에도 격려와 다독임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승리의 환호가 별처럼 쏟아지는 그라운드를 등지고 돌아서는 선수들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은 마음은 쓸데없는 연민일까.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쓸쓸함의 깊이를 가늠해 볼 뿐이다.

    조경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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