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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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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것도 문학인가요?- 희석(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 기사입력 : 2023-10-26 18: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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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여름부터 진주에서 독립출판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각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지금 열심히 책으로 만드는 중이다. 기획, 집필, 편집, 디자인까지 모두 직접 해야 하는 탓에 쉽지만은 않았지만, 곧 결실을 이룰 예정이다.

    강의가 한창 시작될 때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두 가지다. “제가 쓰는 글은 일기 같아서 책으로 나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혹은 “제가 쓰는 글은 문학이라 볼 수 없는 거 같아요.” 겸손을 섞은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과 말투였다. 걱정 마시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대체로 정확하지 않다고 말씀드린 후 검토용 원고를 열어봤다. 역시 기우였다. 그동안 기성 출판물에서 만나지 못한, 빛나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책으로 만들어지면 충분히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이야기들인데, 다들 왜 자신의 작품을 미리 평가절하할까. 아마도 ‘이런 이야기만 문학이 될 수 있다’라고 외쳤던 기성 문학의 공고한 틀 때문 아닐까 한다. 무엇이 문학이 될 수 있고, 무엇이 문학이 될 수 없는지를 갈라놓던 잣대가 많은 작품을 그림자 아래 숨겨 놓고 있다.

    공공연하게 알 수 있듯이 그 잣대를 세운 건 남성 중심 문단이다. 요즘은 여성 작가들이 문학계를 주름잡고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당장 열리는 각종 신춘문예나 문학공모상의 심사위원 명단을 살펴봤을 때도 과연 ‘여성 작가가 문학계를 주름잡는지’ 묻고 싶다. 이 작품이 가치 있는지, 그러니까 ‘문학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쪽은 과거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처럼 다양성이 배제된 시장에 갈증을 느낀 이들이 독립출판 현장을 만들었고, 이제 독립출판은 마이너 문화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독립출판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있다. 내가 쓰고 너도 쓰고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세계. 이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강연장에서 ‘내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도 되는지’ 걱정하던 수강생분들은 교육과정 끝이 다가올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기획 초반엔 아무도 보여주지 않을 소장용 책으로 만들려던 몇몇 분은 지금 독립서점 입고와 북페어 출전까지 준비하고 있다.

    직접 운영하는 독립출판사 발코니도 이 흐름에서 태어난 곳이다. 발코니는 특히나 ‘지역, 여성, 청년’ 등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책을 만든다. 세 가지 키워드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주류 목소리에 가려지기 바빴다. 이러한 현실을 깨고 싶어 지역을 제일 우선순위에 뒀고, 다음으로는 여성, 그리고 청년의 이야기일수록 출간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이 작은 의지가 전체 판을 흔들 정도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더 이상은 책을 쓰기로 결심한 누군가가 ‘내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면 안 돼’라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며칠 전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지역도서전이 열려 참가했다. 발코니의 책들을 꽤 오래 살펴보던 한 노신사는 물었다. “이런 것도 문학인가요?” 그에게 나도 물었다. “문학은 무엇인가요?” 그는 답하지 않고 떠났다.

    독립출판으로 도착하는 물음표는 대개 이렇다. 이제 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다듬어서 보여주는 것이 독립출판의 역할일 것이다. 당신의 머리에 수많은 느낌표가 심어질 독립출판물들이 지역 곳곳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희석(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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