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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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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름다움을 보았다- 문저온(시인)

  • 기사입력 : 2023-11-02 19: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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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를 계속해도 되는 건지 막막하고 힘들었다’고 했다. 청년은 목이 메고 눈가가 붉어지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주먹으로 눈을 씻어내면서 ‘힘내서 계속해 가겠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결선에서 “어무이요, ○○○여사님! 잘 가이소!”라고 투박한 사투리로 허공에 외쳤다. ‘이놈의 집구석’과 ‘당신도 잘한 거 하나도 없는’ 아버지와 그날 이후로 배회했을 거친 날들의 시공을 건너뛰며 펼쳐 보였다. 그리고 영정 앞에서 그는 먹먹한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부른다.

    대한민국 배우열전 시상식에서 금상을 받은 그가 메달을 목에 걸고 트로피와 꽃다발을 들고 수상 소감을 말할 때 듣는 이도 따라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꿈 하나만 믿고 하루를 지탱하듯 살아가는 ‘예술하는’ 청년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기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연신 환호하고 즐거워하던 동상 수상자가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꾸벅 절하던 그 자리였다. 돈을 벌었다고는 하나 상금 이십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을 뿐인데, 동상 중에서도 맨 아래인 6위를 차지한 그녀는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했다.

    상을 받는 것, 호명을 당하는 것, 시상식 무대로 나가는 것, 쏟아지는 축하와 박수갈채를 받는 것, 이 밤이 다하면 식어버릴 열기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뜨겁게 기쁜 것. 애쓴 결과 앞에서 눈물겹게 행복한 것.

    시상식장은 젊은 기운이 충만했다. 나이가 어려서 젊은 것이 아니라, 부딪쳐 도전하고 기껍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기운, 서로 축하하며 한데 어우러지는 기운, 어제까지 고달팠고 내일이 또 그렇겠지만 오늘을 최대치로 늘려서 사는 기운. ‘저것이 젊음이구나!’ 나는 부럽고 또 좋았다.

    나에게도 스물이, 서른이 있었다. 열병을 앓듯이 혼곤하고 돌을 쥐고 던지듯이 단단하고 숨 가쁘던 시절이 불안과 가누지 못할 슬픔과 막막한 혼란으로 뒤범벅되어 나를 다녀갔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르렀는데, ‘사는 일은 매일이 처음인 것 같구나…’ 싶을 때, 이 기운찬 사람들을 만났다. 여전히 서툴고 어설프고 모자란 내가.

    대상을 받은 이는 머리를 곱게 쪽지고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입었다. ‘그런데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폭격당하지 않은 이 마을로 온 거예요.’ 결선에서 넋이 나간 어미의 눈빛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폭격을 받은 마을회관에서 아이들의 주검을 찾는 이야기를 말하듯 노래하듯 들려주던 그가 문득 고개를 들며 말한다. ‘들리죠? 비행기 소리 들리죠?’ 이내 소리친다. ‘이봐요, 여기예요, 여기예요오-!’ 심장이 튀어나올 듯 목을 놓아 오열하는 사람. 무대의 조명이 꺼지자 숨죽였던 관객들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쁨에 겨운 얼굴로 “한 번 발화하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연극 무대를 그래서 더욱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조금 전에 금상을 받은 청년과 둘이 짝이라는 말을 옆에 앉은 친구가 나에게 들려주었다. ‘연극을 계속해도 되나’ 고민하는, 그러나 ‘한 번으로 사라지는 연극 무대를 사랑하는’ 두 사람을 나는 보았다.

    개천예술제 곳곳에서 이런 경연이 벌어진다. 불꽃놀이와 가장행렬과 야시장 말고도 예술제의 속살을, 숨어 있는 ‘예술’을 찾아가서 만끽하면 좋겠다. 그날 나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문저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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