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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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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파국(破局)-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석천학당 원장)

  • 기사입력 : 2023-11-09 19: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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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국(破局)은 일이 잘못되어 끝장났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판(局)이 깨지고(破) 망한 것이다. 경제 파국이니 관계의 파국이니 하는 것은 위기를 맞이하여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거나 관계가 끝장났다는 의미다. 그러나 파국의 다른 뜻이 있다. 지금의 어려운 국면을 깨고(破) 새로운 국면(局)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국면 전환이다. 망한 것과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뜻이지만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부서져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간단한 맥락이다.

    깨지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없다. 익숙한 나를 부서야 새로운 나를 만난다. 곪은 것은 터져야 하고, 썩은 것은 도려내야 한다. 아픔이 두려워 곪은 것을 방치하고, 상처가 두려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손쓸 방법이 없게 된다.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도려낼 건 도려내고, 쳐내야 할 건 쳐내야 한다. 그것이 파국을 겪고 새로운 국면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최악의 상황(窮)은 변화(變)의 계기가 되고, 변화는 새로운 길(通)을 만든다. 일명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궁변통(窮變通)의 파국 이론이다. 우주와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 우주는 파국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인간은 변통을 통해 생존에 성공하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새로운 것은 파국을 통해 형성된다. 지난날 IMF 경제위기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였고, 지구 환경의 파국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는 것이 언제나 나쁜 일만은 아니다. 파국을 견뎌내면 변통(變通)의 국면이 펼쳐진다. 당장은 아프지만 파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모두 안정과 유지를 원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문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점을 알고도 인정하지 않고, 심각함을 느끼면서도 보려 하지 않는다. 방관과 회피, 방치와 도피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과감하게 칼을 빼서 단숨에 얽힌 것을 끊어내야 새로운 길이 열리고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파국의 역설이다.

    맹자는 안락(安樂)의 편안함이 죽음(死)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우환(憂患)의 불편함이 삶(生)의 길로 들어선다는 역설을 설파하였다. 파국을 통해 더욱 단단하고 강하게 하여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안락을 거부하고 우환을 선택했을 때, 보다 높은 수준의 발전과 생존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판을 부수고 새롭게 짜야 할 때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생존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정치판은 파국을 만나야 새롭게 태어난다. 지역 구도에 의지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대중 인기에 영합하여 표를 구하고, 공천권을 쥔 자에 줄을 대어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대안 없는 비판으로 이름을 알리려는 자가 가득한 정치판은 이제 파국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찌 정치의 국면뿐이겠는가? 사법부, 학계, 언론, 시민단체, 교육, 종교 모든 분야에 있어서 파국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지금의 익숙한 것과 과감하게 결별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용기다.

    연극에서 파국(破局)은 대단원(大團圓)이다. 대단원은 연극의 마지막 결말이다. 어려운 실마리가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최후의 극적 전개다. 얽혔던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고, 갈등과 반목이 극에 달해 결국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이 파국이다. 연극에서 막을 내리는 것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숨 돌리기이다. 구습을 혁파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한 신의 한 수(數)가 파국이다. 판에 갇힌 나를 부수고 새판을 짜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안락의 단기 처방이 아닌 파국의 과감한 처방이다. 안락 뒤에 숨어 있는 나를 부수고 깨워야 다시 산다.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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