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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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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손님이 찾아왔다- 김태경(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3-12-07 19: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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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은 뭘로 지을까요?”

    “가을에 왔으니, 단풍이 어때요?”

    우리는 그날부터 ‘단풍아, 풍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을의 시작과 함께 노란 고양이가 찾아왔다.

    고양이가 온다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 손을 어지간히 좋아하며 애교가 철철 넘치는 고양이가 온다는 건, 조금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덩치는 크지만 2~3살 정도로 추정되는 노란 고양이는 모든 사람의 손을 좋아했다. 과연 길고양이가 맞는지 출생부터 의심이 갔다.

    나를 비롯하여 일하시는 분들이 단풍이를 좋아했다. 단풍이는 주변 탐색을 가는 것 말고는 늘 이곳에 머물렀다. 이름을 부르면 어딘가에 있다가 냉큼 달려 나왔다. 먼저 퇴근하시는 분은 남은 사람에게 단풍이의 저녁을 부탁하고, 휴무일 때는 출근하는 사람에게 단풍이를 부탁한다.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빗질을 해준다. 순하고 순해서 더없이 예쁨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풍이도 이곳을 거쳐 가는 고양이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쩌면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르니까. 5년을 이곳에서 머물던 진회색 고양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건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조용하고 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겨울을 보낼 때 항상 고양이가 있었다. 코가 쨍할 만큼 찬 바람이 불면 출입문을 닫아 놓는다. 바깥에 오도카니 앉아 안을 쳐다보는 고양이. 배가 고플 것이기에 먹을 것을 챙겼다. 부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봄의 언저리까지 무사히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겨울만 혹독할 뿐이겠는가. 길 위를 헤매는 모든 시간이 혹독할 것이다. 출퇴근 길에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와 개를 어렵지 않게 본다. 마지막 밤은 어떻게 보낸 것일까. 달도 별도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에서 빛났을 상상을 하며, 지구에서의 날들이 잔인하지만은 않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단풍이가 나타나고 우리는 매일 단풍이 이야기를 나눈다. 단풍이는 분명 잔잔한 우리의 일상을 생기로 흔들어 주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이란 책을 읽었다. 약물 중독자인 남자에게 나타난 길고양이. 그 고양이로 인해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중독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일으킨 남자. 그저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책과 영화까지 만들어진 실화다. 누군가에는 하찮은 ‘고양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일생을 뒤흔들어 준 운명의 ‘손님’인 것이다.

    당신에게도 어느 날 불쑥 손님이 찾아갈 수 있다. 나는 되도록, 많은 이들이 친절을 베풀었으면 한다. 그 친절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고양이와 개를 무자비하게 해치는, 상상도 못 할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있다. 그 어느 지점에서 인간성을 상실하였을까. 공감이 결여된 사회에서 속수무책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닐지 애달프다.

    부디 비난과 잔인함을 앞세우지 말기를. 지혜롭고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만이라도 가진다면 우리 삶 전체에 따스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단풍이는 우리에게 손님이다.

    가을의 시작과 찾아온 손님이 오래도록, 여러 계절을 함께 보내길 바라 본다.

    김태경(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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