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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딱 보니까 100만’… 언론의 역할을 생각한다- 이재달(심산서울병원 부이사장·전 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3-12-20 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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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 보니까 100만’. 언론의 공정성을 논할 때면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유명해진 말이다. 명색이 공영방송인 MBC의 사장을 지낸 박성제 씨가 보도국장 시절인 2019년 10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 참가 인원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것도 타 방송사인 TBS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다.

    박 씨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을 다 보지 않았나. 100만 명 정도 되는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느낌이 있다. 딱 보니까 이건 그 정도 된다”라며 “면적 계산하고 이런 거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감으로 안다”라고 했다.

    감으로 안다? 참으로 발칙한 말이다.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언론사에 기자로 입사하면 가혹할 정도로 트레이닝을 받는다. 그 이유는 팩트에 충실한 기사를 쓰도록 기초를 다져주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확인한 팩트에 따라 기사를 작성하고 논설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팩트는 언론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신입 기자들은 선배들로부터 발로 뛰는 기자가 되라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현장을 직접 보고, 현장에서 팩트를 찾아 기사를 쓰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뉴스 책임자라는 사람이 ‘감’으로 떠들어대니, 기자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 그가 책임지던 뉴스는 한쪽 진영을 크게 열광시켰던 반면, 다른 진영으로부터는 심하게 배척당해 왔다. 불행히도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 중이다.

    그는 또 “서로 갈등이 있는데 무비판적으로 똑같이 중계하는 게 공영방송의 역할인가”라고 되물으며 “사회적 이슈에 시대정신과 관점을 적극적으로 담아보는 ‘적극적 공영방송’이란 개념을 제시하고 싶다”라고도 했다. (강준만, ‘MBC의 흑역사’) 다시 말해서 기사에 기계적 중립을 버리고 지향해야 할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치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가 자신의 주관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그 판단 기준과 가치는 언제나 옳다고 볼 수 있는가?

    문재인 정부 시대에 이러한 가치지향적인 보도가 노골화되었고, 그런 풍조가 언론의 주류가 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신봉하는 가치와 이념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무차별적인 기사가 지면을 도배하고 방송의 전파를 오염시켜 왔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 현상에 사로잡힌 독자와 시청자의 환호에 더욱 칼춤을 추었다.

    특정 층의 충성심 지표나 다름없는 신뢰도 몇 위라는 여론조사에 도취해 그런 현상이 공고해졌다. 반면에 다른 쪽의 강한 불신에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진영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이 패었다.

    언론의 주요 기능이 사회문제 해결과 구성원 간 갈등 해소라고 여긴다. 문제와 갈등을 팩트에 근거해 보도하고 대립하는 측의 견해를 공정하게 다루면서 해법을 찾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따라서 팩트 기반과 중립성은 대중의 신뢰를 담보하는 양대 축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대개 여러 방면에 걸쳐 ‘두루’, ‘어느 정도’ 알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기자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부지기수다. 요즘에는 대중들 또한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상당한 지적 토대와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시대정신이라는 미명으로 대중을 계몽한답시고 투박한 이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현장의 대중이 필요하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정보의 원천(original source)은 현장이다.

    오늘날 언론이 사회적 흉기라는 비판에 종사자들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구성원 간에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하며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언론계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그런 과제를 남기고 떠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재달(심산서울병원 부이사장·전 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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