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가고파] 죽은 자를 향한 분노- 이지혜(디지털뉴스부 기자)

  • 기사입력 : 2023-12-20 19:32:13
  •   

  • 지난달 방영이 끝난 드라마 ‘연인’을 본방사수까지 하며 챙겨 봤다. 치욕의 역사인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한 여성의 성장과 로맨스가 중심 내용이었지만 드라마가 종영에 가까워질수록 무능력한 인조와 안타까운 소현세자의 죽음이 극의 몰입도를 더했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소재로 한 영화도 본 터라 나라의 굴욕을 자신의 열등감으로 승화시켜 아들에게까지 투영한 역사 속 인조의 찌질함이 곱절로 와닿았다.

    ▼인조를 다시 만난 건 드라마 종영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한 지도 앱에서였다. 인조는 ‘테러’를 당하고 있었다. 별의 개수로 식당이나 관광명소 등에 평점을 매기는 ‘별점’을 일부러 극단적으로 낮춰 평판을 떨어트리는 ‘별점 테러’였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의 무덤 ‘파주장릉’에는 1개짜리 별점이 수두룩했고, 여기에 ‘이것도 왕이라고’, ‘별 한 개도 아깝다’, ‘무덤이라 쓰고 쓰레기 매립지라 부른다’ 등 엄청난 ‘댓글 테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부관참시(剖棺斬屍), 직역하면 관을 쪼개고 시체를 벤다는 말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그 시체에 극형을 내리는 걸 말하며, 정치적인 이유 또는 그 위세에 눌려 죄목을 따지지 못했을 경우 시행한다. 상황과 목적을 고려한다면 망자에 대한 분노로 여러 형태의 비난과 명예 훼손이 이어지는 것은 ‘현대적 부관참시’ 쯤에 해당하겠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으로 전두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다시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망하고도 유해는 자택에 안치 중이다. 북녘이 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는 그의 유언대로 파주의 한 사유지가 유력한 상황에서 지역의 반대가 거세다. 고향 합천에 있는 ‘일해공원’ 명칭 논란이 다시 주목받고, 세금으로 관리된다는 그의 생가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면(永眠)은 꿈꿀 수도 이룰 수도 없겠다.

    이지혜(디지털뉴스부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지혜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