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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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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폭탄과 국밥- 문저온(시인)

  • 기사입력 : 2024-01-25 19: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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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8일 전국에 눈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극한 추위와 봄 날씨가 번갈아 나타나고 큰 눈이 쏟아지는 등 극단적으로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진다고 했다. ‘눈 폭탄’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같은 날 국제면 기사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발발한 뒤 가자지구에 하루 평균 10명이 넘는 어린이가 폭발 등으로 다리를 잃는다는 기사였다. 석 달간 1000명이 절단 수술을 받고 그것도 마취 없이 수술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득 생각했다. 가자지구에도 눈이 올까? 가자지구의 일기예보는 ‘눈 폭탄’이 쏟아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큰비가 오면 기상캐스터는 ‘물 폭탄’이 쏟아진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아, 폭탄이라는 말이 너무 가볍다.

    ‘대설주의보’를 검색했다. 최승호의 시 ‘대설주의보’.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시인은 ‘눈보라’라고 쓰고 있지 않은가.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잠시 숨을 멈춘다. 계엄령…. 책꽂이에서 시집을 꺼낸다. ‘1판 1쇄 펴냄 1983년 4월 20일’. 아아, 비상계엄령이 쓸고 간 80년대. 시인은 그 시대를 살고,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겨울 풍경을 썼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인지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고 썼다.

    다시, 가자지구에서는 눈 폭탄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극단이 모자라 ‘폭탄’을 쏟는다. 그 말이 먹힌다. 이상하다. 폭탄을 맞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폭탄을 맞아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폭탄이라는 말을 쓴다. 그럴 때 말은 사람 사는 세상을 벗어나 모종의 기호로만 존재한다. 이미지만으로 가득한 허황한 모국어.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흘을 굶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같은 지역 분이 계신다면 국밥 한 그릇만 사달라’고 썼다. 그리고 도움이 쏟아졌다. 돈이며 옷이며 일자리 제안도 있었다. 그는 ‘염치 불고하고’ 계좌번호를 보냈으며 ‘너무 배가 고프고, 또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다시 글을 올렸다. ‘진짜 비관적이고 깜깜한 어둠뿐이었는데 많은 분들께서 빛을 비춰주셔서 이제 일어서 그 빛을 따라 한 발자국 내디뎌보려 한다’. 더 뭉클한 것은 그다음 말이었다. ‘희망이 없다 보니 그동안 목표가 없었는데, 첫 목표는 첫 월급을 타면 작은 기부라도 해보는 거다. 주신 도움 갚는다는 마음으로 다음 글은 기부 글 올리는 걸 목표로 하겠다’고 썼다.

    국밥을 원한 것은 부실한 치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콩나물국밥 앞에 앉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 김 서린 화면으로 글쓴이의 데워진 마음이 전해졌다. ‘설령 글 내용이 사기일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진짜 어려운 사정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그 사람을 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도움을 준 사람의 마음도 전해졌다. ‘국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말이었다. 사람을 채우고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다. 과장도 비유도 없는 말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문저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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