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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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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불꽃이 그리운 날- 천현우(작가)

  • 기사입력 : 2024-04-01 19: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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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대부분 시간을 공장에서 기판 납땜하고 철판 때우며 지냈다. 그러다 SNS에 썼던 먹고사는 이야기들이 유명해지더니 느닷없이 서울에서 글밥을 먹게 됐다. 준비 과정 하나 없이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가 된 특이한 이력 때문에 받는 오해가 있다. “쟤 현장에 안 돌아가고 글만 쓰겠구나.” 실제로 내 책 ‘쇳밥일지’ 리뷰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응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한테는 용접보다 글쓰기가 훨씬 끔찍한 노동이다. 하얀 한글 문서가 좀처럼 메워지지 않을 때마다 늘 용접 생각부터 나곤 했다. 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노동의 본질이 달라서였다.

    글쓰기, 나아가 콘텐츠 제작 노동의 태반은 좌절이 일상이다. 모든 콘텐츠는 중간 순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 외엔 기억 못하는 원리다.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대부분 망한다. 결과물의 성과도 예측불허인데 만드는 과정 또한 들쭉날쭉하다. 어떤 날은 두어 시간 만에 뚝딱 나오는 글이 안 써질 땐 사나흘 붙잡아도 완성을 못 한다. 오랜 시간 걸려 쓴 작품이 실적도 안 나오면 자존감은 단숨에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그뿐인가. 글은 관성만으로 쓸 수 없다. 생각나는 대로만 썼다간 금방 소재가 고갈나기에 주어진 업무 외에도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해야 한다.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 보고 싶지도 않은 책과 영화를 보는 건 기본. 취재를 위해 때때로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미혹은 또 얼마나 많은가. 컴퓨터에 앉아 글 쓰다 막히면 메신저도 확인하게 되고 SNS도 찾아보고 싶기 마련. 결국 ‘딴짓 욕구’를 차단하는 환경 조성에 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누군가에겐 이런 자유로운 업무환경이 내겐 늘 스트레스였다.

    반면 용접은 노동 태생이 딴짓하면서 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잠깐의 실수가 곧 불량으로 이어지기에 끊임없는 집중을 요한다. 굉장히 피곤하긴 해도 괴롭진 않다. 눈앞의 불꽃과 손 끝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자기갱신의 압박감도 별로 없다. 용접은 하다 보면 알아서 는다. 노력하면 더 빨리 늘기야 하지만 그래도 몇 년은 ‘지져봐야’ 숙련자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잘하려고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정 기량만 갖추면 누구나, 언제든지 1인분 몫을 할 수 있다. 하루하루 결과물이 일정하므로 안 풀린다고 조급할 일이 거의 없다. 용접 기술자들은 유달리 자부심이 강한데, 그 이유가 성과 때문에 자책할 일이 없는 노동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동엔 귀천이 없어야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이 상하관계라고 여긴다. 그 생각이 틀렸다며 이 악물고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겪어보니 사람마다 손에 맞는 일이 각자 다르더란 말을 하고 싶다. 둘러보면 나 같은 사람이 제법 있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쓴 배윤슬 도배사는 전직이 사회복지사였고, ‘노가다 가라사대’의 송주홍 목수 또한 본래 기자 일을 했었다. 두 작가는 현장 노동을 하는 현재가 수입도 더 좋고 직업 만족도 또한 높다. 사람들이 현장직이 마냥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이보다 보람찬 일도 많지 않다. 내가 참여한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노동이 몇이나 되겠는가. 페인트 새로 칠한 빌라나 용접 마치고 시운전을 시작한 열차를 볼 때면 얼마나 뿌듯했던지 모른다. 이는 탈고 다 한 원고 더미를 볼 때와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다. 만약 현장 일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일단 시도해보시길 적극 권장한다. 나도 모르는 천직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이 칼럼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용접 불꽃이 그리웠다. 아무래도 전업 작가는 평생 못 하지 싶다.

    천현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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