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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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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裳風’ 이 남긴 교훈

  • 기사입력 : 2002-08-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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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상(張裳) 국무총리서리가 국회의 총리 인준이란 벽을 끝내 넘지 못하
    고 낙마했다. 이것은 그 자신의 불행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 최초의 여
    성 총리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던 여성계의 기대감이 무너진 것도 아쉬운
    점이지만 더 큰 문제는 총리직 공석으로 인한 국정 공백과, 여야간 책임 떠
    넘기기식의 싸움질로 인해 정국이 파란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동의안 부결’을 두고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인사파행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데 반해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반대했으며 첫
    여성 총리 탄생을 좌절시켰다’고 성토하는 분위기다. 자민련은 ‘안타깝지
    만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 반응이 3당3색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결과의 원인은 결론적으로 말해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그 근본적
    인 책임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정의 2인자를 지
    명함에 있어서 그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함은 필수적 사항인데 청와대가
    그 임무를 과연 충실히 이행했는지 의문이다. 총리후보자 신상과 관련해 문
    제점이 발견됐다면 당연히 내정하지 말았어야 하며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지명을 강행했다면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모르긴 해도, 김대통령은 아들의 비리로 인해 잃은 국민의 신뢰를 ‘여
    성 총리 기용’이란 카드로써 만회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도움은 커
    녕 엄청난 부담만 안게 됐다.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의 수가 작게로
    는 10여명, 많게로는 3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당에 민주당의 지
    원을 바란다는 것도 이제 무망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무엇보다도 또 한 차례 국민의 신뢰를 잃었으니 대통령으로서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것은 곧 국정을 총괄해 나갈 수 있는
    힘의 상실로 이어져 급속한 레임덕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게 될 것이란 점
    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이 참으로 걱정된다.

    장상(張裳) 본인의 도덕적 흠결과 정직하지 못한 언행은 뭐니뭐니해도 이
    번 결과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위장전
    입과 부동산투기의혹, 학력 변조, 아들국적 문제, 주거공간 불법개조 및 재
    산세 누락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그 책임을 연로한 시어머니와 비서에
    게 떠넘기는가하면 행정착오로 돌리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심지
    어 위장전입은 실증법 위반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실수이지 위법은 아니
    다” “(법을 어길) 의도가 없었는데 위법이 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
    를 폈다.

    이러한 언행을 목격한 의원들과 국민들이 그를 어떻게 내각의 수장으로
    인정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이번 동의안 부결은 국민의 뜻이 엄격하
    게 반영된 결과로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보아야 한다.

    첫 국회인사청문회를 두고 누군가가 ‘추궁만 있고 검증은 없다’고 비판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말은 한 면만 바라본 단견이다. 이번 인사
    청문회는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흠결을 가려내는 최후의 보루요 검증장치
    로서의 그 역할을 훌륭히 해 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21일동안 파란을 일으
    킨 ‘상풍(裳風)’은 이제 서쪽 하늘 너머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이 바람
    이 남긴 후유증은 심각하다. 국정공백 현상과 정국불안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상풍(裳風)’이
    우리들에게 남겨준 교훈도 적지 않다. 그 첫째는 국정을 책임지는 공직자
    의 경우 더욱 엄격한 도덕적 청결성을 소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능력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둘째, 확고한 국가관과 준법 정신이 필수적
    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셋째, 책임질 줄 알며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위의 사항들은 새삼스런 것들이 아니다.

    그렇지만 국민이 모든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절실한 덕목임이 재확인된
    것이다. 다시한번 당부하건대 정치인들은 이번 총리 동의안 부결의 후유증
    에 대한 책임 전가식 싸움질을 중지하고 정국 정상화를 위해 초당적인 힘
    과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김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철저한 검증을 거쳐
    도덕성과 자질을 두루 갖춘 덕망있는 새 총리후보를 신중히 물색, 최선의
    인물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목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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