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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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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以民風治逆風’의 날은?

  • 기사입력 : 2002-08-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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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정치권은 ‘兵役風’이란 회오리 속에 파묻혀 그 視界를 가늠하기조
    차 힘들다. 경남 김해·함안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의 수재민들은 전 재산
    을 水魔에게 빼앗기고 가슴을 치면서 슬픔에 잠겨 있는데 우리의 정치인들
    은 집권을 위한 무한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
    한 정치를 펴겠다고 하면서 이들 가운데 과연 몇명이나 수해 현장을 방문
    해 진심으로 수재민들을 위로했는지 묻고 싶다. 핏발선 눈으로 상대당을 향
    해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선출한 민의의
    대변자인지 권력 창출의 化身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兵役風’을 한번 살펴보자. 그 핵심은 한나라당 李會昌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불법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는지 아닌지 그 진실을 가려내는데 있
    다. 이것과 관련해 李후보는 만약 자신의 아들이 불법 면제를 받았다면 정
    계를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이렇게 背水陣을 치고 나온 까닭은 부당
    하게 병역면제를 받은 것이 아님을 확신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 문제로
    발목잡히면 끝장이란 위기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확신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반드시 그 실체적 진실
    이 밝혀져야 할 일이다. 민주당은 병역비리 및 은폐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
    명을 촉구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현재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
    며, 한나라당은 自黨 대통령 후보를 낙마시키려고 기획한 정치공작이라 주
    장하고 대통령의 사과와 관계자 문책을 요구하면서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
    임건의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총력 투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이 문제는 특정 黨이 집권을 목적으로 하여 정략
    적으로 이용할 일이 아닐뿐만 아니라 자신의 당 대통령후보와 관련된 것이
    라하여 후보지키기 차원에서 사생결단할 사안도 아님을 지적하고 싶다. 따
    라서 어디까지나 검찰의 수사를 조용히 지켜보아야 한다.

    시끄러운 ‘兵役風’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필자가 중서부전선 철책을 지키
    는 최일선 부대에서 근무하던 지난 76년의 사건이 생각난다. 그곳은 북에
    서 발원한 임진강물이 군사분계선을 지나온 첫 지점인 강의 중류지역으로
    서, 주먹만한 자갈돌밭으로 이루어진 강변과, 그 맑은 물 속에 戰雲의 두려
    움을 알리 없는 쏘가리들이 평화롭게 유영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그
    해 8월18일, 판문점에서 세칭 ‘도끼만행사건’이 터졌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즉각 ‘데프콘3(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한데 이어 3일
    후 ‘데프콘2(전쟁돌입상태)’ 발령과 동시에 필자가 속한 연대본부 장병들
    은 어둠속을 뚫고 방어진지가 구축된 산(玉女峰)으로 올라가 밤세워 진지
    를 지켰다. 그 때 결연한 자세로 장병들을 지휘하던 연대장(통일부장관을
    지낸 현 林東源 대통령특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일촉즉발
    의 긴장감이 감돌던 그날밤에 우리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자신의 한 목숨을 조국에게 바친다는 각오를 다졌던 것이다. 만약
    그때 전쟁이 발발했다면 최일선에서 방어하던 우리 부대원들은 아마도 모
    두 전사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남북화해의 물꼬가 트여 전쟁의 위험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예전
    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 전선을 지키는 우리의 현역국군들은 나라를 위협하
    는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일거에 격퇴하겠다는 필사의 정신으로 국토
    방위에 전념하리라고 믿는다. 우리를 지켜낼 힘을 소유해야만 국가를 유지
    할 수 있다는 점은 시대를 초월하는 命題이다. 그러므로 李會昌 후보 아들
    의 병역면제 의혹뿐만 아니라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등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자제 88명에 대한 병역면제 의혹도 반
    드시 밝혀져야 한다.

    지난 73년, 외국인 유학생을 둔 미국 하숙집에서 있었다는 일화다. ‘제4
    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두 유학생이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집 주인이
    까닭을 물은 즉, 이스라엘 출신 학생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으므로 싸우러
    간다고 했고, 이집트 출신 학생은 본국으로부터 참전하라는 소환장이 올까
    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고 했다는 것이다. 상반된 이 두 사람의 정신
    자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전쟁은 역사가 전하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완승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국방의 의무야말로 참으로 신성한 것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
    하거나 면제받으려 한 사람들은 한 마디로 厚顔無恥한 자로서 국민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깨어있는 국민들의 ‘民風’
    으로, 권력을 잡기 위해 극한투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의 ‘狂風’을 쓸어버
    리고 나아가 ‘兵役風’의 진실을 깨끗이 밝혀낼 수는 없을까. 순리의 ‘民
    風’으로써 원칙과 도덕을 거스르는 ‘逆風’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는
    ‘以民風治逆風’의 그날을 기대해 본다./목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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