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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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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맛 그리고...] 진주 헛제삿밥? (18)

  • 기사입력 : 2002-08-26 00:00:00
  •   

  • 옛날 흉년이 들었을 적
    하루 두끼 죽으로도 힘든 시절
    하루 세끼 먹은 선비들 책 읽다가 출출해지면
    남의 눈 의식해 헛제사 지내고 요기한게 `유래`
    상민들도 기름진 음식 먹고싶어
    가짜제사 지낸 뒤에 지어먹었다는 설도
      
    진주 평안동 `진주 헛제삿밥` 집 3대째 명맥유지
    나물의 가짓수는 반드시 홀수
    식기도 놋으로 만든 제기 사용
    색다른 분위기에 정감가는 맛!
    입소문 들은 이들 종종 찾아…[편집자주]


    휘영청 밝은 달빛. 조촐하지만 깨끗한 기와집에서 나지막히 책읽는 소리
    가 담을 넘는다.

     자시(子時)께. 이 생원의 아내와 찬모는 방에서 나와 조용히, 그러나 잰
    걸음으로 부엌과 마루를 오간다. 탕국, 밥, 편육, 전유어<&28137>. 차림을
    보니 제삿상이다.

     잠시 후 책을 덮고 나온 이 생원이 상을 들인 방으로 간다. 이어 진한 향
    냄새와 『유세차(維歲次)<&28137>』로 시작하는 축문 낭독 소리가 글읽는
    소리대신 담을 넘는다. 이웃 초가의 김 서방네는 필시 『양반은 다르구먼.
    사흘 걸러 제사니』하며 예사로 넘길 것이다.

     실은 제삿상을 받을 조상은 없다. 그럴 것이 오늘 본 상은 글공부하는
    이 생원과 그의 친구들을 위한 「헛제삿밥」이기 때문.

     흉년이 들어 가뜩이나 흉흉해진 인심. 하루 두 끼 죽으로 때우기도 힘들
    어 평민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 하루 세끼 다 먹고 밤참까지 챙겨먹
    을라치면 아무래도 걸리는 데가 있다. 그래도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 보면
    그냥은 잠들 수 없을 만큼 허기가 지니, 고안해 낸 방법이 조상없는 헛제사
    를 지내고 제삿밥을 먹는 것이다.

     선비^양반의 고장으로 유명한 진주와 경북 안동지방에는 이같은 유래를
    지닌 「헛제삿밥」의 흔적이 지금껏 남아있다.

     헛제삿밥은 양반들 사이에서는 「속임수」라기보다는 하나의 식문화 또
    는 계급문화로 인식됐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유생들 사이에서는,
    진주의 헛제삿밥 관례에 대해 부러움 섞인 입소문이 많이 퍼져있었다니 말
    이다.

     경상대 식품영양학과 김성희 교수에 따르면 「헛제삿밥」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유래가 있다. 제사는 없지만 제삿밥의 기름진 음식들을 먹고 싶었
    던 상민들이 「가짜 제삿밥」을 지어먹었다는 것. 특히 진주 헛제삿밥은 조
    선시대 경상관찰사로 부임했던 한 식도락가가 제삿밥을 특히 좋아해서 생겨
    났다는 유래도 있다. 매일 밤 야식으로 제삿밥을 구해오란 명령을 받은 사
    령들이 꾀를 부려 「헛제삿밥」을 지어다 바쳤으나 향냄새가 음식에 배지
    않아 탄로가 났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진주에서 헛제삿밥을 내고 있는 식당은 현재로서는 단 한 곳, 평안동의
    「진주 헛제삿밥」(☏746-3633)이다.

     주인 이명덕(55)씨와 그의 친정어머니 이달순(78)씨, 그리고 이명덕씨의
    두 며느리 등 3대의 손맛으로 제삿상을 차리는 집. 명맥을 잇고 있다하나
    실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으로, 제수음식이 아닌 밑반찬도 두세가
    지 끼워 먹기좋은 한식 상차림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기본은 제삿상이
    다.

    주인없는 헛제사지만 법도는 있었을 터. 나물의 가짓수는 반드시 홀수(7
    가지)를 지키고, 전유어 등 전류는 미리 부쳐두었다가 먹을 때 다시 데워
    서 낸다. 조기와 돔 등 윤기 흐르는 제수 생선은 간한 뒤 푹 찌고, 식기도
    놋으로 만든 제기(祭器)를 쓴다.

     오징어, 명태, 피문어, 새우 등 갖은 해물을 넣어 끓인 탕국, 윤택한 흰
    살 생선으로 차린 상은 간고등어와 두부^무^쇠고기만으로 끓인 탕국이 오르
    는 안동의 헛제삿밥과 구분된다.

     「음복(飮福)」이라 해서 남은 제사음식과 탕국에 설설 밥을 비벼 먹었
    던 것처럼, 커다란 놋그릇에 일곱가지 나물과 해물 탕국을 넣어 비벼먹을
    수 있게 했다.

     제삿날은 아니지만 제삿밥이 먹고 싶어 찾아가는 요즘 사람이나, 제사는
    없었지만 출출해서 제삿상을 차렸던 선비들이나 헛제삿밥을 찾는 동기는 비
    슷한듯 싶다.

     헛제삿밥에 대해 연구와 강의를 해 온 진주 일신요리학원 정계임 원장은
    『진주의 헛제삿밥은 그 역사가 깊음에도, 안동과는 달리 거의 명맥이 끊기
    다시피했다』며 『「선비문화」를 관광상품화하면서 사장되다시피했던 음식
    문화를 되살려낸 안동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글:신귀영기자 사진: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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