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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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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흰눈, 화해와 평등의 깨우침

  • 기사입력 : 2003-01-24 00:00:00
  •   

  • 밤새 눈이 내렸다. 사방의 산과 들, 집과 도로가 온통 하얗게 빛난다. 흰
    눈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렇지가 않다. 실로 얼마만의 흰눈인
    가. 일년내내 눈 구경하기 힘든 남녘이고 보면 참으로 귀하고도 신비한 신
    (神)의 선물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한결 여유가 생겨난다.
    바쁜 일 잠시 접어두고 은빛으로 뒤바뀐 찬란한 세상 구경에 여념이 없
    다.

    손주와 함께 눈사람 만드는 할아버지, 다정스레 손잡고 눈길 걷는 연인,
    자동차 지붕에 소복히 쌓인 눈을 치울 생각도 않고 마냥 바라보기만 하는
    운전자, 아예 눈밭에 드러누워 버리는 개구장이들의 모습이 정겹다못해 신
    기하기까지 하다. 그 무엇이 사람들의 찌든 마음을 이처럼 환하게 바꾸어
    놓을 수가 있을까. 이들의 가슴 속에는 지금 흰눈 외에는 아무것도 파고들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 흰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 채워 놓는다.

    지난해 집중호우로 사태진 계곡, 난(亂)개발로 등허리 잘려나간 산맥, 군
    데군데 움푹 패어 흉물스런 토취장 등등 깊은 상처로 울고있던 산들이 어느
    새 울음을 거두고 하얗게 웃고 있다. ‘하늘의 묘약’ 흰눈이 일시적이나
    마 아픔을 치유해 주기 때문이리라.

    파릇파릇 잎 내민 보리밭을 하얗게 뒤덮은 흰눈 이불은 차가운 겨울 바람
    을 막아주면서 메마른 땅을 촉촉히 적셔준다. 어두운 우리를 빠져나와 백설
    (白雪)의 들판을 질주하다가 흰눈 먹으며 갈증 해소하는 양들의 모습은 계
    미(癸未)년 한 해의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
    이다.

    “밤새 흰눈 쌓여도/ 까치집은 그대로다/ 눈보라 태풍에도 끄덕 없는/
    내 마음 속 둥지하나/ 욕망의 유혹에 물들지 않고/ 갈등의 파도에 흔들리
    지 않는/ 세상사에 눈멀고 귀먼 보금자리/ 해뜨면 흔적 없이 사라져도/ 절
    대 평등의 하얀 집을 짓고 싶다”(자작시 ‘소망’) 지난밤 쌓인 눈에 소나
    무 가지끝의 까치둥지가 무너져 내리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杞憂)였다. 인간이 쌓은 그 어떤 성채보다도 견고하고 의연하게 본래
    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나도 이러한 까치집 같은 둥지하나를 가
    슴 속에 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흰눈처럼 평등한 것은 없을 것 같다. 지상의 온갖 것들, 갖은 오물
    과 쓰레기까지도 순백으로 치장해 주는 흰눈이 아닌가. 실로 오랜만에 내
    린 흰눈이다. 거리의 낯모르는 사람들도 그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인사
    를 한다. 출근 시간이 좀 늦으면 어떤가.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시내버의 승객들도 초조해 하거나 불만스러워 하지 않는다. 하늘이 공평하
    게 내려준 선물을 고마워하면서 마음껏 즐기고 있다. 어쩌면 쫓기듯 살아
    온 지난날을 까맣게 잊고 있는 듯이 말이다. 결혼을 앞두고 사진촬영에 열
    중이던 남녀 한쌍이 흰눈 쌓인 공원에 서서 마주 껴안고 ‘평등의 사랑’
    에 빠져 있다. 순백의 드레스가 바람결에 나부끼는 모습이 흡사 설원(雪原)
    을 가로지르는 백마의 갈기같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란 선시(禪詩)를 남겼다. 해석하자면 “눈 쌓인 들판을 갈 때도/ 부디 어지
    럽게 걸음 걷지 말게나/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취는/ 후인들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라네”란 뜻이 될 게다. 민족의 지도자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은 일생동안 이 시를 애송하면서 좌우명(座右銘)처럼 마음속 깊이 품
    고 살았다고 한다. 선생의 이 싯귀 친필서예 작품이 어렷 남아 있다. 서산
    대사의 시(詩)임을 밝혀주는 시비(詩碑)가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백범선생
    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쩌면 서산대사는 이 시를 통해 중생들이
    어려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모두가 평등한 부처님의 세계로 나아가기
    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인터넷상에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명단이 적힌 살생부(殺生簿)가 떠
    돌아 다닌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왕조시대의 피비린내나는 숙청
    을 상징하는 이 말이 왜 횡행하는지 모르겠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불화와 갈등을 조장하는 이 ‘문건’의 최초 작성자와, 그 의
    도 및 배후가 밝혀지리라고 본다.

    이제야말로 지역갈등과 편견을 청산하고 모두가 하나되는 대통합의 시대
    를 열어나가야 한다. 눈 쌓인 들판을 보라. 일체가 흰색 ‘하나’이지 않는
    가. 태양이 뜨면 흰눈은 소리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풀기 힘든 오해라고 해
    도 마음을 열면 ‘설니홍조(雪泥鴻爪)’ 즉, 눈위에 찍힌 기러기 발자국이
    눈 녹으면 흔적 없이 사라지듯이 말끔히 해소할 수가 있다. 마음의 떼를 깨
    끗이 씻고 흰눈이 말해주는 화해와 평등의 교훈을 되새기도록 하자.
    /목진숙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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