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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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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한말 애국계몽운동과 한용운

  • 기사입력 : 2003-06-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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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1879~1944)은 불자이나,
    그 생애는 불교만을 위한 데 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의 삶은 조선의 독
    립과 발전, 그리고 그 민중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명저 『조선불교유신
    론』도 불교의 사상만을 널리 알리고자 한 데 있지 않았다. 불교를 어떻게
    이해하며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사실이나, 실은 불
    교의 유신을 통해 조선의 유신을 꾀하고자 했다.

    『조선불교유신론』은 불교적 인식만으로는 그 의의를 제대로 알 수 없
    다. 철학적 인식문제가 제고돼야 하는데, 특히 근대계몽철학의 실천논리가
    중시돼야 한다. 만해가 이 책에서 불교는 ‘종교이자 철학’이라 한데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짚어져야 할 것이다. 근대계몽철학이라고 함은 이 책의
    저술완료시점인 1910년과 출간시점인 1913년이 각각 근대에 해당될 뿐만 아
    니라, 무엇보다도 이 책의 내용이 철학적이고 계몽적이기 때문이다.

    1905년 일본 군국주의는 조선을 소위 `보호조치`하며 5년 뒤, 1910년에
    는 아예 `병합`하고 만다. 이를 각각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라 하거니
    와, 경술합병 이후, 많은 선각자들이 이 땅을 떠남도 주지하는 바다. 신채
    호가 그랬으며, 만해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의 망명은 지금까지 싸워
    온 ‘붓’을 통한 방식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보고, 그 대신 ‘칼’을
    들기로 한 것이다.

    을사에서 경술까지의 ‘한말(1905~1910)’ 국권회복운동은 크게 두 갈래
    로 나눠 진행됐다. 하나가 유림과 구식군인을 중심으로 한 의병항쟁이요,
    다른 하나가 장지연·박은식·신채호 등이 참가한 ‘애국계몽운동’이었
    다. 의병항쟁은 경술 이후 그 무대를 만주로 넓혀 나가 나중 독립군의 중요
    한 성분이 된다. 신채호의 경우, 경술을 계기로 그 이전까지의 애국계몽운
    동방식을 무력운동방식으로 바꾼 사례다.

    만해는 돌발적인 사건을 만나 귀국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의 만주 망명
    은 단기간의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일생을 애국
    과 계몽운동으로 시종일관할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참가와 1920년대 그의 청년불교운동이 그런 맥락이다.

    만해가 『조선불교유신론』을 1910년에 이미 탈고했다는 점에서 그와 한
    말 애국계몽운동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조선불교유신론』은 애
    국계몽운동이 낳은 한 산물이지만, 책에 깃든 정신과 취지는 이미 애국계몽
    운동으로 배출돼 나갔다. 만해가 승려라는 신분의 제약상 장지연 등이 펼
    친 애국계몽운동에는 활발하게 참가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만해
    의 정신과 삶은 애국계몽운동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이다.

    ‘명 애국계몽 사상가’ ‘민족 3사가’ 등으로 불리는 장지연·박은식·
    신채호 등은 을사 이후 ‘대한자강회월보’ 등의 학회지에 명 애국계몽 논
    설을 펼쳐나갔다. 이들은 일제를 탓하기에 앞서 조선이 왜 그들의 ‘보호
    령’이 돼야하는지를 돌아보고 그 이유를 민중에게 널리 알렸다. 그래서 자
    강운동이라고도 한다.

    한말 애국계몽운동에는 당시 중국의 계몽사상가로 저명한 양계초의 영향
    도 적지 않았다. 만해를 비롯한 우리 선각자들은 양계초의 사상을 거의 예
    외 없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평소 잘 연마한 한문 실력을 바탕으로 사회진
    화론 등 양계초가 소개하는 서양의 근대학술문명을 힘들이지 않고 접촉할
    수 있었다. 만해는 ‘신동’이라 불렸던 만큼 그 학문소양은 일찍부터 뛰어
    났고, 출가한 후 불교서적을 섭렵한 탓에 그 지적 수준과 영역은 장지연 등
    의 정상급 지식인에도 견줄 만했었다.

    올해는 『조선불교유신론』의 출간 90년 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려 불교
    신문사와 의상만해연구원에서는 꽤 큰 규모의 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오는 8월 7일 백담사 만해문학박물관에서 관계 전문가들로 대회를 갖
    고, ‘조선불교유신론의 21세기적 의의’를 새롭게 다질 모양이다.

    승려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쟁쟁한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만해의 삶
    에 그가 한말 애국계몽운동사상가의 일인이라고 함이 새로 추가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 공백에 가까운 그의 1900년대 활동이 새로
    운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허도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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