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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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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심상찮은 여-여 갈등

  • 기사입력 : 2003-07-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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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일찍이 이전 정부에선 없던 일들이 속속 터지
    고 있어 실로 혼란스럽다. 이것이 새 가치, 새 질서를 위한 진통이라면 몰
    라도 그렇지 않다면 정말 걱정이다. 국가 리더십의 부재를 초래하기 때문이
    다. 딱히 피아(彼我)의 구분이 없는, 이 혼동을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까.

    신당창당문제로 지루한 논란만 펴오던 민주당 신·구주류 간의 갈등이 지
    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휴식기에 들어가 있다. 그 대신 신주류 간의 갈
    등이 한창이다. 대선자금 폭로로 이미 청와대와 각을 세운 정대철 대표가
    어제는 청와대더러 문책인사를 단행하라고 요구, 또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새 정부 출범 전후로 마치 처남·매제같이 좋기만 하던 노 대통령·정 대
    표 사이가 지금은 회복불능 단계로 틀어져 있다. 이 갈등의 고리가 개인 간
    의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청와대와
    민주당 간의, 즉 `여(與)-여(與) 갈등`으로 번지는 것 같다.

    민주당은 엊그제 대선자금을 공개하면서 중요한 대목은 살짝 비켜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당의 후보로 확정(4월)되어 정식 선거대책기구가
    발족(9월)하는 5개월간의 선거자금 사용내역은 빼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이 부분은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고해성사’를 하라는 얘기나 같다. 노
    대통령도 이를 짐작했음인지 지난 21일 대선자금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근
    태식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다며 한나라당과의 공동 공개라면 모를까 민주
    당의 ‘선(先) 공개’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뜻
    과는 상관없이 단독공개를 한 것이다.

    ‘정치자금 양심선언’으로 잘 알려진 김근태 의원은 어제 법원에서 검찰
    이 징역 6개월, 추징금 2천만원을 구형해 다음달 14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김 의원은 최후진술에서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의 대세’라고 말해 이를 피해간 노 대통령을 간접 비난했다. ‘거짓이 양
    심을 비웃지 말라’, ‘정치자금 투명화는 민주화의 또 다른 장정(長征)’
    이라는 등의 네티즌 반응도 어제 볼만했다. 김 의원은 이미 노 대통령의 정
    치자금(지난해 4~9월) 공개를 요구하고 있거니와, 민주당이 이를 당론으로
    집약하여 노 대통령에게 공개요구할지도 누가 알겠는가.

    정책분야에 있어서도 여-여 간의 입장이 미묘하게 대립한다. 어제 산업자
    원부는 전북 부안군 위도를 원전 수거물(핵 폐기장) 관리센터 부지로 최종
    확정했다. 노 대통령도 이를 유치 신청한 군수에게 직접 격려전화를 했다.
    그런데 고창·부안 출신의 정균환 의원은 극력 이를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은 오는 31일 본회의에 앞서 ‘정책의총’을 열어 새만금사업과 핵 폐기장
    부지 선정 등의 양대 현안에 대해 당론을 모을 예정이다. 그런데 이 자리
    서 만약 정부의 입장과 다르게 견해가 표출된다면 여-여 갈등은 정점을 향
    해 치달을 전망이다.

    당초 구주류 핵심으로 노 대통령과 불편했던 한화갑 전 대표는 요새 들
    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정부 출범 초기 혼동은 새 질서 정립
    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며, ‘노 대통령은 결국 자리를 잘 잡아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노 대통령으로선 현재 정대철, 김근태, 정균환 의원 등
    과 모두 불편한 관계를 이루고 있어 이들처럼 불안하긴 매일반이다. 더욱
    이 세 사람은 각각 ‘통합신주류’, ‘재야개혁그룹’, ‘구주류’의 리더
    이지 않던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최근 자신을 ‘행정부 수반’이라며 여야 등거
    리 관계론을 피력한 것과 관련지어 오는 8월말쯤 민주당을 탈당할 것이라
    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노 대통령이 탈당하면 여-여 갈등은 형식
    상 없어진다. 그러나 본격적인 정부·의회 간의 마찰이 그 뒤를 이을 수 있
    다. 그럴 경우 대북비밀송금 추가특검법안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
    사는 그 전초전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동시에 여당을 통
    해 사실상 국회를 통제해 오던 이전 정부와는 또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허도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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