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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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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새판 짜면 된다

  • 기사입력 : 2003-10-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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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곡을 찌를 말에는 긴말이 필요 없다. 정치권이 켸켸묵은 비리를 씻고
    그 스스로 거듭나면 된다. 몇 명, 몇 십 명쯤은 정화의 칼을 맞고 쓰러져
    도 싸다. 민주주의란 나무란 원래 피를 먹고 자란다는데 그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지난 대선, 한나라당은 거의 다 이기고서도 졌다. 올해도 그런 예외가 아
    닌 것 같다. 봄부터 여름 지나 가을까지 한나라당은 승승장구, 정국을 이끌
    었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이대로는 더 못하겠다며 재신임을 묻겠
    다고 했을까.

    그러나 전세는 역전되고 말았다. 한해 농사를 태풍 매미가 할퀸 것과 비
    슷하다. 한나라당이 갑자기 수세에 몰린 것이다. 그것도 노 대통령이나 여
    권으로부터의 카운트펀치를 맞아서가 아닌, 이상하게도 제풀에 꺾이고 말았
    다. 굿이라도 해야 할까. 잘 되다가도 끝에 가서 안 풀리니 말이다. 다 잡
    은 정국을 놓친 한나라당, 이 말밖에는 지금 해줄게 없다.

    그래도 무슨 반전이랍시고 한나라당은 ‘특검’운운한다는데 그것 역시
    한나라당식 발상일 뿐이다. 검찰이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특검이지, 검찰이
    잘 하고 있는데 웬 특검인가. 한나라당은 또 ‘전체 정치권을 상대로 대선
    자금 전모를 밝히자’고 하는데 그럴 생각이라면 진작했어야 했다. 즉,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발표할 때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측근비리부터 규명하자며 ‘재신임’에 담
    긴 정치개혁에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다 ‘SK 100억원 당 유입’을 맞아
    허둥대고 있다. 문제의 최돈웅 의원이 “당이 나서 달라”고 했을 때는 팔
    짱만 꼈던 당 지도부다. 자기한테 급하지 않으면 급할 게 없는 한나라당이
    다. 민주당이 지난해 ‘국민참여 대선후보경선’, ‘대선후보단일화’등의
    정치적 이슈를 선점할 때 한나라당은 구경만 했다.

    이번 역시 검찰의 ‘칼’이 다가오지만 ‘나완 상관없다’가 대책의 전부
    였다. 그렇다고 현 지도부가 지난 대선 지도부를 향해 파워게임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게 돼가고 있다. 최병렬 대표가 은근
    히 이회창 전 총재에게 짐을 떠넘기려 한다. ‘털건 털고 간다’는 게 그
    의 속내이자 표현이다.

    이 전 총재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일 귀국기자회견에서 그는
    ‘재신임’과 ‘SK돈’에 대해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뭇 의기
    (意氣) 있어 했다. ‘그럼 그렇지’,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안도했다. 그
    러나 그 다음날부터 그는 집에 박혀있다. 그가 정말 차남 결혼식과 부친 1
    주기만을 위해서 왔을까. 그랬다면 ‘성대’한 기자회견은 왜 가졌을까. 정
    말 최 의원의 ‘SK 100억’과 무관할까. 그러면 칩거는 왜 하나. 이젠 그에
    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조차도 회의(懷疑)적인 것 같다.

    일각에서는 최 의원의 “SK돈은 당으로 갔지, 이 전 총재의 대선 사조직
    에 가지는 않았다”고 한 것과 관련, 이것은 최 의원이 이 전 총재를 도운
    것이라 한다. 그러나 둘러치나 매치나 매한가지다. 어느 쪽이든 이 전 총재
    를 곤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결국 총체적인 정
    치개혁이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고백하고 용서받자”
    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더욱 개혁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어제 국회 앞
    에서 정치개혁하자며 강력하게 외쳐댔다.

    이제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아 새로 판을 짜면 된다.
    시대가 걸러내는 사람들만이 이 시대를 이끌 수밖에 없다. 이 시대란 무언
    가. 다들 지식정보사회라 하지 않던가. ‘야인시대’식 ‘폭력 민주주
    의’, 정경유착식의 ‘돈 민주주의’가 물러가고 진정한 ‘지식 민주주의’
    가 열려야 한다. 정치하는데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 그런 풍토가 돼야
    한다. 이에 맞게 선거법을 고치면 된다.

    국회 김형오(부산 영도구) 의원은 최근 특이한 성명서를 냈다. 개인연설
    회만 남기고 ‘돈 선거’, ‘악(쓰는)선거’의 원천이 되는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를 없애자고 한다. 소위 ‘돈은 묶고, 입은 푼’ 현행 선거법에
    대해 ‘입도 묶자’고 한다. 사실 사람들은 허위사실 유포 등, 상대방 비방
    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런 ‘입’이라면 풀지 않아도 된다. 청중동원만 없
    어도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 운동장 대신에 사이버를 열자는 게 김 의원
    의 생각이다. SK사건으로 정치권이 거듭났으면 한다.
    허도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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