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20일 (월)
전체메뉴

[금요칼럼] [금요 칼럼] `나무`만 보는 공무원

  • 기사입력 : 2003-11-28 00:00:00
  •   
  • 얼마전 우연히 만난 A씨에게서 들은 이야기 줄거리가 시간이 흘러도 뇌리
    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때때로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는 잘못된 공
    직풍토에 기인하고, 근시안적인 행정행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천포가 고향인 A씨는 타지인 부산에서 건설업을 해오면
    서 많은 고생을 이겨내고 지금은 어엿한 중견 기업인이 되어 의욕적인 사업
    을 펼치고 있다. 그런 A씨는 지난 4월, 고향인 삼천포에 상업부지 수백평
    을 구입해 주상복합 아파트 신축계획을 시에 접수했다는 것.

    A씨가 제출한 건축사업계획서는 현행 건축관련 조례나 제한사항 등 설계
    사무소의 면밀한 검토를 거친 내용으로서 법상 하자가 없었다. A씨는 고향
    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쌍둥이 모양의 탑상형 건물로 설계하고, 높이도 허
    용 범위내에 높다랗게 해 삼천포의 명물로 자리잡도록 했다는 것. 그 과정
    에서 시 담당자와의 사전 협의를 거쳐 건축심의에 필요한 보완작업도 소홀
    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A씨에게 통보된 심의 결과는 건축불허였다. 그 이
    유는 한 마디로 건물 모양이 너무 `튄다`는 것이었다. 주변 도로의 열악함
    과 인접 건축물에 대한 생활권 침해 우려 등은 실제 상황과 맞지도 않는,
    형식상의 불허처분 사유였을 뿐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타면서 건축물 또
    한 예전과 달리 현대적 감각을 강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수적
    인 면이 짙은 각급 학교건물마저 예술성을 살리고 친근감을 안겨주는 방향
    으로 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전 진주에서는 호텔 건물보다 더욱
    미학적 감각을 살린, 삼각 편대 모양의 고층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선보여 사
    람들의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이달 중순 대전에서 있은 지역균형발전과 개발촉진지구사업 활성화 연찬
    회에서는 창선·삼천포대교 주변 개발사업의 `튀는 건물`이 우수사례로 선
    정된 바 있다. 남해군의 단항 매립지에 세워진 이 휴게소는 여객선 모양의
    공공시설로, 이곳을 지나가는 누구라도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경쟁력
    을 키우고, 주변 환경과 시대의 흐름을 십분 살린 모양이요, 추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허가관서는 해당법규가 충족되더라도 주변 여건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을
    때 행정조정이나 사전심의를 통해 조율을 하는 절차를 갖는 걸 관례로 삼
    고 있다. 이 경우 해당 공무원이 제 맘에 들지 않거나 아니면 일이 무섭거
    나, 상관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할 때 민원인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민
    원인의 창의적인 구상은 해당 공무원을 잘못 만났다간 묵살되기 일쑤다.

    지역에 따라 기준이 모호한 건축허가 행정은 오늘날 이땅에 사는 공무원
    들 이야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밖에서 보면 우물안 개구리 같은 공
    무원들의 행태는 하나 둘 아니다. 가까이 있는 마산시를 보자. 시내에 가보
    면 모두들 `죽는다`고 아우성인데 그들만 벙어리인지, 아니면 앞뒤 분간이
    안 되는지 헷가릴 때가 많다. 어느 사이 도내에서 가장 취약한 경제 사정
    에 놓인 곳이 다름 아닌 마산이 아닌가.

    경남도청 이전에 이어 법원·검찰청사와 각급 도단위 기관들이 속속 창원
    으로 옮겨간 뒤 창원의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이사행렬이 뒤따랐다. 접객업
    소에 이어 중소 점포와 제조업, 공구상 등 중소업체, 그리고 병원 등이 도
    미노현상을 일으키듯 줄지어 창원이나 김해 장유·진영 등지로 짐을 싸고
    있는 게 마산의 현주소다. 지난 태풍 매미는 엎친데 덮친 격이 돼 버렸다.
    이제 많은 마산 사람들이 고향과의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
    과언일까.

    도시의 이런 공동화 현상과 경제난을 피부로 실감하고 대책 수립에 안간
    힘을 다하는 공무원이 마산시에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10월 해안도로에
    서 있은 가을 전어축제를 보자.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회복
    하고자 시에서도 의욕을 가진 행사였다지만 결과는 안한 것만 못한 꼴이 돼
    버렸다. 외지인을 끌여서라도 판을 벌여야할 잔치에, 찾아온 손님마저 내쫒
    는 꼴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일대 어디를 둘러봐도 딱히 주차공간이 없는
    터에 자가용이고 관광버스고 불법주차 단속을 해댔으니 어느 누가 스티커
    끊는 걸 휜히 알면서 회맛을 보겠는가.

    시내 점포들이 너나할 것 없이 문을 닫아야할 지경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시는 갈수록 주차 단속엔 더욱 세게 나오고 있다. 성시를 이루던 마산
    의 어시장과 오동동 상가가 주차와 교통이 힘들어 사양길에 접어든 사실을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상부기관의 지시
    대로 움직일 뿐 도로변 5분내 주차 같은 임시대책 마련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종근(논설위원 겸 기획사업부국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