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6일 (목)
전체메뉴

명화산책

  • 기사입력 : 2005-07-21 00:00:00
  •   
  •  권미옥(경상대학교 미술교육학과 강사)  한국미술사에서 조각은 어떠한 맥락을 유지하며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신라의 석굴암과 최근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해인사 목조 본존불 등 불상의 경우를 제외하면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조각상은 없다.

      한국미술사를 논하면서 불상의 경우를 제외한다거나. 서양의 조각적 전통을 굳이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궁금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근대 이전에는 이순신장군상도 세종대왕상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서양에서의 기념비적 상의 제작이 동양에서는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서양의 구체적 형상의 조각상이 동양에서는 탑과 비석으로 대치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특히 고려시대의 불교미술이 쇠퇴한 이래 사실상 조각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석과 탑의 문화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오며 실제적 인물상을 제작하는 전통의 부재 속에서 출발한 한국근현대조각사에서 괄목할만한 인물이 바로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이다.

      최초의 근대조각가로서 김복진(1901~1940)이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역사를 세울만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뒤를 잇는 김종영이 바로 한국현대조각의 선구자로서 또. 추상조각을 도입하고 전개한 인물이다.

      김종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조각사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 1915년 창원 소답동에서 태어난 그는 휘문고등보통학교와 동경미술학교를 거쳐 1948년부터 1980년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김종영(1915~1982)作 자각상(Work 71-5) 

    1971년. 나무. 15×15×25㎝. 김종영미술관 소장

      1936년 석고로 제작한 <소녀상>을 시작으로 1953년경에 추상조각을 선보였으며 자연적 모티프를 단순화하는 작업을 통한 절제된 기교의 품격 있는 작품세계를 펼쳐보였다. 그 중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 제작된 <자각상>은 그의 대표작들 중 하나이다.

      서구의 조형기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의 작품에 배어 있는 정신은 동양적 유희라 할 수 있다. 조각 작품은 분명 인간 예술 활동의 결과물로서 인위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인위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되돌려 놓는다.

      간결하고 단순화된 선과 볼륨에서 동양적 감성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나뭇결의 살림이 눈. 코. 입을 휘감으며 아래로 내려오는 선들에서 더 한층 강한 동양의 정신성을 읽을 수 있다.

      작품의 시작은 그가 이 나무토막을 발견하면서이다. 일상의 나무토막이 작가의 손을 거치자 옹이는 불거져 나온 눈이 되고 자연스러운 나뭇결의 흐름은 어느덧 작가적 고뇌를 가득 담은 기막힌 표현력을 담게 되었다.

      자연으로부터 가져와 최소한의 손짓으로 다시 태어난 이 한 점의 목조각은 눈. 코. 입의 모든 특성들을 세밀하게 표현하지 아니하고서도 충분히 작가의 고뇌와 사색의 정도까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한낱 나무토막이었던 것이 작가의 손을 거치자 그의 혼을 실은 듯 옹이 맺힌 눈으로 자연과 인간을 관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