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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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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업보

  • 기사입력 : 2005-10-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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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성스님 (진해 대광사 주지)
      노스님이 제자를 데리고 절 아래의 마을 앞에 놓여 있는 다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여러 마리 작은 구렁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스님의 기척을 느낀 큰 구렁이는 여러 마리 작은 구렁이들을 데리고 토굴 밖으로 몸을 드러내 슬픈 눈으로 두 분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애절한 눈빛이었다. 제자를 돌아보시며 노스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저 구렁이는 이 다리를 놓을 때 공사를 맡았던 책임자였다. 그리고 여러 마리 작은 구렁이들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사에 필요한 돈을 많이 거둬서 다리 놓는데 다 쓰지 않고 나누어 착복하고 말았느니라. 그 과보로 저들은 다리를 맴돌며 업보가 녹을 때까지 지키고 있느니라.”

      “지금 우리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은 구렁이 몸을 빨리 벗을 수 있도록 법을 베풀고 기도해 달라는 애원이다.” 노스님은 구렁이들을 향해 마치 사람을 대하듯 법을 설하셨다.

      불가에서는 업보를 무섭게 여긴다. 세상 어떤 현상도 절로 이루어진 것 없으며 그 때 함께 하는 존재들의 업보가 이어져서 일어난다고 본다. 업보란 어떤 행동에 대한 돌아오는 결과다.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은 반드시 반응이 있다. 그 반응이 업보인 것이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와 같다.

      업보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으며 언제라도 받아야 하는 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르시되 “백겁을 지나더라도 지은 업보는 면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반드시 받게 된다” 하셨다.

      오늘도 신문 사회면은 부정을 고발하는 기사로 어지럽다. 어떤 사람은 대북 사업 그 숭고한 민족 사업을 열면서 개인 착복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친족에게 부정으로 문화사업을 하게 해서 그 부작용으로 숱한 사람을 다치고 죽게 했다고 한다. 어찌할는지 그 막중한 업보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라 / 기러기는 서쪽 하늘을 날고 / 풀벌레는 숲을 적시네. / 고향집 뜨락엔 / 이미 별이 돋아나려니 / 어머님 무릎을 벤 / 코 흘리게 아이놈들 / 단 꿈이 고우리라.

      고향에 두고 온 아이들과 어머님 그리고 고향 그리움에 대한 옛 시다. 객지를 떠돌며 명예와 부를 좇아 하염없어도 언제나 고향집 뜨락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돌아가 안주하고 싶은 생각은 늘 이어지지만 명예에 대한 욕심을 떨치지 못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채워질 날 없으니 돌아갈 날은 기약 없고 마음만 바쁘다.
    진정한 고향은 해맑아 한 점 티도 없는 청정심이다. 모든 이가 어김없이 지니고 있는 청정심은 탐욕에 물들기 이전의 마음이다. 고향인 것이다. 청정심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불성이다. 해탈인 것이다.

      한 치 어긋남도 없는 업보의 무서움을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이 깨달아 저마다의 역할에 성의를 다하고 공정을 기해서 몸서리치는 업보에 휘말리지 않기를 제발 기도한다. 행여 업보를 가벼이 여겨 다리 아래의 구렁이 과보를 받는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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