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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지옥 아니면 천국?

  • 기사입력 : 2007-06-13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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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적 성당에 다니던 시절. 무서울 것이 없던 나였지만 지금까지도 나의 무의식 속에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나쁜 짓 하면. 지옥 간다”는 수녀님 말씀이었다. 아이들과 떠들고 장난치고 유리창 깨고 도망치고 여자애들 괴롭혔던 개구쟁이였던 나를 바로잡기 위한 결정적인 훈계였지만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내 존재 깊이 각인된 원초적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지옥에 대한 그림들을 보면서 유쾌한 기분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신들. 무엇보다도 지옥 불에서 고통 받지만 그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영원히 그 속에 갇혀 고통 받아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괜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지옥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지옥에 대한 고전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게 된 것이다. 천국과 분리된 한정된 공간에서 지옥불로 대표되는 극도의 고통을 영원히 받음으로써 자신의 죄를 영원히 한탄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배제된 곳이 지옥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 정확하게 말해서 아무런 대화도 소통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끼리 대면해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곳이다.

    아무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자기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과 영원히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아무런 관심도. 사랑도. 대화도 없는 곳이 지옥이라면. 사랑과 관심이 넘쳐나고 따뜻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은 천국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았다. 대학교수인 여자 주인공과 사형수인 남자 주인공의 삶은 지옥이었다. 아침 해를 바라보면서 희망찬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수면제를 털어 넣는 여자와 하루하루 죽음의 시간을 맞으며 지내야 하는 남자의 삶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들의 지옥 같은 삶을 구원해준 것은 ‘대화’였다. 두 사람은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속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처지가 같음을 알게 되었고 서로의 아픔과 서로에 대한 연민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누구의 삶이 더 지옥 같은 지 경쟁적으로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그들이 나눈 ‘들음의 대화’는 결국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제가 되었다.

    우리 집은. 우리 학교는. 우리 직장은 지옥인가? 천국인가?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는지 천국에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서로가 얼마나 마음의 문을 열고 진정한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기적인 삶을 뛰어넘어서 더불어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리라. 그리고 나의 삶의 자리가 천국이 되는 일차적 조건은 대화와 소통에 있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썰렁한 유머라도 걸어보자. 실없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말을 걸어 보자. 힘들어 하는 가족에게.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보자. 내 일이 아니라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고태경(율리아노. 성지여고 교목 담당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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