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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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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산행과 독서 / 최미선

  • 기사입력 : 2007-09-14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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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지리산에 갔다. 오래전부터 작정해온 일을 결행한 것이다. 사람들은 ‘산행’을 두고 인생과 닮아있다고 하지만. 산행은 어쩌면 독서의 과정과도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 이즈음의 생각이다. 얼마 전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책읽기’를 하고 있다. 새 책을 처음 대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산리 버스 정류장은 광활하기 그지없다. 홀로 산행이라서 더 휑하다. 삼남을 껴안고 있는 거대한 산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군소 봉우리만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지리지리한 저 산을 왜 올라가야 하나.” 스스로에게 자문하지만. 답을 얻기도 전에 산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기념품 상점과 상점 사이로 나있는 조그만 길옆에 ‘정상’이라는 팻말과 화살표를 보고도 근처의 주민들에게 묻는다. 단체 산행일 때에야 앞선 사람을 쫓아만 가면 되었던 일이 혼자일 때에는 사뭇 달라진다. 거듭 길을 확인하게 되고 그래도 미심쩍어서 주민들에게 확인질문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길이 산으로 가는 길인가요?”

    아이들에게 새 책을 주었을 때. 약간씩 두려워하는 표정. 약간씩 지루해하는 표정. 약간씩 힘들어하는 표정. 그 표정들과 무엇이 다르랴? 심지어 “이 책 꼭 읽어야 돼요?”라며 답이 뻔히 나와 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나. 정상으로 가는 표지 팻말을 보고도 “산으로 가는 길이 맞냐?”고 묻는 것이나 그 서툰 질문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서머셋 모옴은 독서가 ‘모험’이라고 했다. 그만큼 혼자서. 스스로 알아 터득해 나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공원관리소를 지나고 야영장을 지나면 비로소 본격 산길이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이내 숨이 찬다. 터벅터벅. 발걸음은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한걸음. 한걸음. 딛고 올라가면 산은 미동도 않고 가만 받아주기만 한다. 다만 산속에서 울려오는 엄청난 진폭의 자연의 합창소리만 반겨줄 뿐이다. 계곡물은 바위를 치며 내달린다. 때로는 낭떠러지를 만나 폭포가 되기도 한다. 계곡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물소리가 온산을 뒤덮는다. 풀벌레 소리가 협주곡의 선율처럼 물소리와 어울린다. 매미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심 가로수의 매미는 매~하고 극악스레 울지만. 지리산 산속의 매미는 미~하고 청아하고 길게 운다. 자연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산길을 오른다. 그러나 산길은 금방 험준한 절벽으로 변한다. 가파른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어떻게 올라 갈 수 있을까?’ 숨은 턱까지 차오르는데. 그래도 한발씩 오르노라면 절벽은 결국 오르게 된다. 돌 틈 사이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샘물을 한 컵 마신다. ‘찌르르’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물의 전율을 느낀다. 맛이라면 이만큼 단맛이 또 있겠는가. 굴참나무 아래서 포도 몇 알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산행이란 워낙 자연과의 일대일 대면이긴 하지만 홀로 산에 오를 때는 나무가 바위가 풀이 좀 더 세세하다. ‘반달곰 출몰지역’ 먼발치에서라도 반달곰을 한 번 보게 된다면 아마도 뜻밖의 횡재일 것 같다. 독서를 하는 동안 행간에서 얻게 되는 뜻밖의 깨달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다니엘 페나크는 독서에 대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읽게 두라”고 했다. 읽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제대로 이해는 했는지. 걸맞은 레벨의 책을 읽었는지 점검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마치 “소설처럼”. 소설을 읽듯이 그렇게 독서를 권장했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자기의 구미에 맞는 책만 골라 읽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고 어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다 맡겨 놓으면 진전이 있겠냐고 염려하는 것이다.

    서머셋 모옴은 독서광이었다. 그는 ‘서밍업’에서 ‘잠깐이라도 독서를 못하게 되면 마치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뺏겼을 때처럼 신경질적으로 변한다’고 적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카드놀이나 대화가 휴식이 되는 것처럼 모옴은 독서가 휴식이라고 했다. 그는 사교. 음식. 술. 사치. 운동 등 온갖 감각적인 유혹을 얻을 수 있는데까지 얻어내려고 했으나 결국 책으로 되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가였다. 그런 그도 보다 젊은 나이였을 때 누군가 ‘독서’에 대해 가이드를 해주었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즈음 논술과 관련해서 독서바람이 일고 있다. 반드시 ‘광풍’으로 변해야 될 바람이다. 그러나 독서는 시험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인격 완성’이 그 본령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미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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