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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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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을의 절정에서 - 조화진(소설가)

  • 기사입력 : 2007-11-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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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나무들이 예쁘게 물들어 있다. 겨울이 지나면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던 쉘리의 시구처럼 정말이지 어디를 가도 아, 아름답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바라봐도 커피냄새가 날 것 같고 가슴이 두근댄다.

    하루가 다를 만큼 깊어가는 계절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듯 간만에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자기 일을 해왔던 친구다. 최근에 전직을 해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나름대로 바쁘다고 했다. 나이가 웬만큼 들어서 그것도 ‘아줌마’ 티가 나면 전문직이라도 ‘옳은 직장’ 구하기는 완전 제로고, 구한다 해도 마트의 캐셔나 몸으로 하는 단순직 아니면 자기처럼 영업직이라 했다. 그나마 자기는 몸으로 부딪히는 타입이라서 어렵게 뚫고 들어갔다 했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 키워놓고 나면 나이는 먹어버렸고 일자리는 없고 ‘주부’라는 좀 한직 같은 정체성 애매한 단어를 실상 드러내놓고 빳빳이 내세우지 못하는 게 우리 주부들이다. 그래도 친구는 자기 사업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고 용기도 있었다.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결혼과 더불어 주부가 된 이들은 무얼 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절망적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10년 혹은 20년 후의 내 모습난에 ‘현모양처’라고 얌전히 적어 넣던 아이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교육을 많이 받아 똑똑한 엄마들은 더 이상 자기 딸이 현모양처 따위의 이제 구식이 된 명사를 써넣지 않도록 교육시킨다. 아이들도 치과의사나 인테리어디자이너, CEO, 파티쉐 등 좀 더 구체적인 희망사항을 적어낸다.

    현모양처보다 더 아름다움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어디에 또 있겠는지.

    사실 적당한 일거리가 없어 집에 있는 아줌마들이 생각보다 많다. 등산이나 음식점에 가면 여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걸 많이 보곤 한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갈 데 없는 여자들이 음식점이나 산에 기를 쓰고 가는 건 아닐까. 왠지 그런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들의 상실감이나 욕구불만, 할 일 없음 따위 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김인숙의 단편 ‘술래에게’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사는 게 심심한 여자가 11층의 베란다에서 침을 뱉는다. 침은 아파트 아래의 화단까지 내려가지 못한 채 9층의 베란다 턱에 막 걸쳐지고 있던, 햇살에 눈부신 하얀 이불 위에 내려앉고 만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통쾌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도 한 번 따라해 보고 싶었다. 따분함과 지루함이 참을 수 없게 온 몸을 근질이면 비명을 지르고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그런 나를 아무도 이해해주진 않을 것이다. 세상이 화살처럼 변해도, 아무리 바빠 미칠 지경이라도, 산다는 건 무료함의 연장선상일지 모른다. 단지 시간이 남아돌아서… 할 일이 없어서…. 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불행한 인자(因子)다.

    어제도 오늘도…. 짐작컨대 또한 내일도 오늘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왠지 삶이…. 방전된 휴대폰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무작정 집을 나서 걷는다. 이것이 내가 터득한 무료함의 치유 방법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어 걷다 보면 쑥쑥 자연이 뒤로 밀려나고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걷는 것만큼 내 맘도 풀어져 종내는 마음도 심플해지는 것, 이것도 삶인 것이다.

    조 화 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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