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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기다림의 즐거움 - 박영희 (소설가)

  • 기사입력 : 2008-05-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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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살 어린 아들이 한글을 아직 다 모른다고 대걱정을 하는 젊은 엄마를 최근에 만났다. 우리 집 아이도 그랬는데 지금은 글짓기상도 받고 용돈을 받을 때와 게임시간을 놓고 설전을 벌일 때는 아주 우수한 국어실력(?)으로 이 엄마를 설득한다고, 이제 7살인데 뭘 그러느냐고 다그치지 말고 차분히 기다려 주라고 했었다.

    나에게 뭔가 특별한 대책이나 비밀교육법이라도 있는 줄 알고 한 말인 것 같은데 나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그 젊은 엄마는 조금 실망스런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일기도 줄줄 쓴다는데 아직 제대로 된 문장 하나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젊은 엄마의 고민이었다. 그러니 엄마를 따라 온 한글공부에 지친 아이도 별로 얼굴이 밝지 못했다. “초조해 하지 말고 그냥 아이와 같이 어머니가 동화책 좀 많이 읽어 주세요” 라는 나의 말에 “유치원 다녀와서 태권도 학원 갔다 오면 밀린 학습지 하나도 겨우 하는데 언제 글짓기 학원 보내고 동화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 주어야 하느냐” 고 시간 모자람이 이 모든 불행을 만든 원인처럼 말했다. 영어는 벌써 단어도 아는데 도대체가 한글로 자기 표현을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한다. 그래, 물론 말이 안 된다. 자기 나라 국어인 한글을 먼저 알고 영어를 알아야 되는데 이 시대가 보통서민의 시대가 아닌 만큼 어쩌랴 싶어졌다. 그래도 내 대답은 이렇다. “기다려줘요, 제발!”

    내 말의 뜻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 할 공부를 미리 다 하고 간다면 무슨 재미로 학교를 다니냐는 것이다. 또 7살 아이가 일기를 쓰면 또 얼마나 잘 쓰랴, 순수함으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에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보다 불안의 눈빛을 읽은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물론 그 젊은 엄마의 전전긍긍하는 안타까운 마음은 알고도 남는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오래 전 아이 걱정에 초조해 할 때 선배가 지금의 나처럼 젊은 엄마인 나를 향해 말했었다. 기다려 봐!

    그때 나도 젊은 엄마처럼 이런 저런 온갖 곳을 찾아 헤매며 아이를 볶아대었다. 그래도 아이의 실력은 언제나 그 자리였다. 지칠 때쯤 그래, 때 되면 하겠지. 교육은 시키되 방목하는 심정으로 느긋하게 아이에게 대하니 아이 얼굴도 점점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겨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일기 쓰기도 잘해 갔다.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이런저런 욕심을 버리고 시행착오 끝에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기다림의 미덕이 어찌 아이의 성장에만 있을까? 둘러보면 우리 삶의 곳곳에 숨어 있다. 식당에서도 버스에서도 좀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서도 느긋하게 기다리질 못하는 습관들이 불쑥불쑥 나온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언제나 오후 4시에 와 준다면, 나는 3시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해서 행복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해.’

    기다림의 즐거움을 이렇게 잘 표현한 글이 있을까 싶어진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하여 다음 주까지는 시내 중·고등학교의 중간고사 기간이다. 시험결과가 나오고 나면 성적에 목숨 거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성적을 쫓아 헤매고 다닐 것이다. 공부는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과 같다. 초반에 조금 잘한다고 마무리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좀 늦게 출발해도 자기 페이스를 찾아서 꾸준히 달려간다면 막판 레이스에서 지치지 않고 골인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주도 학습처럼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이가 월계관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의 인생이 아이의 인생까지 포함해서라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이 자녀 교육인 것 같다.

    며칠 안 있으면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이 무슨 날이지? 라는 질문에 학원 안 가도 되는 날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 답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그 젊은 엄마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기다림의 즐거움을 나처럼,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싱그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수한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고 난 다음이겠지만 말이다.

    기다림의 즐거움. 하늬바람에 풍차 돌아가듯 하는 이 나이에야 알게 되다니, 늦었지만 이 축복 같은 즐거움을 오월의 싱그러움 속에서 룰룰랄라거리며 마음껏 누리고 싶다.

    작가칼럼

    박영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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