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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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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반면교사 - 김 경(시인)

  • 기사입력 : 2008-05-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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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여름 날의 귀뚜라미 같은 소리로 귀뚤귀뚤 지극한 서정을 노래했던 시인이 있었다. 혹자는 그의 시적 미학세계를 한(恨)과 자연이라는 소재주의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는 시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6·25와 5·16이란 한국 역사의 사회문화의 격동기 속에서 그 사회와 체제에 반항했던 큰 구호와 몸짓과는 비교할 수 없으나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시대를 발언하려 했던 한 시인이기도 했다. 여름 내내 나무의 집을 적시던 귀뚜라미 울음처럼 맑은 시심으로 어휘를 몹시도 아끼며 우리의 서정을 일깨워 주었던 시인, 그가 바로 박재삼 시인이었다.

    시인의 고향 사천에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건립되고 있다. 창포 빛 바다의 자연경관이 빼어난 노산공원에 문학관이 들어선다는 것은 문학을 매개로 한 문화관광의 자원화 차원에서는 상당히 잇속 있는 문화행정임과 동시에 문학애호가들에게는 문학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담보하는 창작공간이 될 것이기에 기대가 크다.

    그러나 평생 가난하게 살다 간 한 문인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 건립은 건립 초기부터 지역문인들 간에 논쟁이 되었다. 태생부터 가난하여 임종 직전까지 그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 시인의 생전 삶과는 대조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문학관을 지음이 옳은 것인가? 앞마당이 잘려나가 볼품없는 집이긴 하나 그나마 15평 정도 남아있는 시인의 생가를 복원함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견이 맞섰다. 다른 지역처럼 친일문제나 이념과 사상의 복잡한 논쟁이 아닌 ‘지극히 낮았으며 또한 다정하기까지 하여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던’ 시인의 인간적인 삶을 다시금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생가 복원보다는 문학관 건립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현재 문학관 건립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지금부터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얼마 전에 개관한 하동의 ‘이병주문학관’을 찾았다. 그다지 수월치 않은 지방도를 따라 이병주문학관을 대했을 때의 허망함이라니! 이명산 자락에 위치한 이병주문학관은 덩그러니 세워진 건물과 허술한 조경이 한 시대를 살다간 문인의 발자취를 기리기보다는 오히려 퇴색시키는 느낌을 주었다. 변변한 안내 표지판도 없이 찾아간 길도 길이거니와 정작 찾아간 문학관은 안내 책자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전시실의 조명도 어두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에너지 절약 차원의 자연 채광으로 설계된 건물이란 설명은 들었지만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 열람하는 문학관의 기능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주변에 어떠한 편의시설도 갖춰 있지 않은 이병주문학관을 둘러보면서 비단 이런 허망함이 이곳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문학관이 개관했거나 건립되고 있다. 문학관 건립은 분명 지역문학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립한 문학관이 지역의 문화 인프라 구색 갖추기로 문학박물관 역할만을 하는 곳이 많다. 이는 지속적인 재정지원의 문제와 운영미숙 그리고 지역민, 문인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불러 모을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 본다.

    한 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인 문학관은 지역문학인과 문학단체들의 창작의 산실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사랑방 구실도 해야 한다. 향토의 작고 문인과 지역에서 발간되는 동인지와 기관지, 지역문인들의 개인 발간물까지 함께 전시할 수 있는 소박한 <향토문인관>까지 배려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

    막대한 예산을 들여 덩그러니 건물은 지어 놓았건만 찾는 이 없는 문학관! 지레 겁먹고 내가 사는 사천에 건립되고 있는 박재삼문학관까지 걱정된다. 평생 걱정거리 머리에 이고 사시던 친정어머니같이 “미리 자사서 하는 걱정” 쯤으로 남겨지길 바라면서‘반면교사(反面敎師)’사자성어를 떠올려 본다.

    작가칼럼

    김 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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