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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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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문화-25 경남도무형문화재 제7호 감내게줄당기기 보유자 이용만씨

‘게줄’ 엮은 뜻을 요즘 사람들은 알려나
일제 때 맥 끊겼던 밀양 ‘감내게줄당기기’ 1970년대 하보경 선생 등이 복원

  • 기사입력 : 2008-05-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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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내게줄당기기 나발·소도구 제작 보유자 이용만씨가 몸통줄에 젖줄을 연결하고 있다.



    감내게줄당기기 공연 모습.



    “끼(게)요? 정말 많았죠.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만해도 남의 통발을 털다 혼나기도 했죠.”

    내륙 깊숙이 자리한 이곳 밀양에도 정말 참게가 있었을까 의문을 갖고 있던 기자에게 밀양 감내게줄당기기(경남도무형문화재 제7호) 보유자 이용만(69)씨는 이처럼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씨가 살고 있는 마을은 밀양시 부북면 감천리. 마을 옆에는 물맛이 달았다는 감천(甘川), 즉 감내가 흐르고 있다. 감내는 밀양강과 만난 뒤 삼랑진에 이르러 낙동강과 합류한다.

    바다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지만, 윗감내(上甘)와 아랫감내(下甘)를 합쳐 모두 50여호에 이르는 이 마을의 주민들은 감내에서 게를 잡아 찜과 게장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지금은 높은 제방이 쌓여 있지만, 이전에는 참게가 감천과 들판을 오가는데 장벽이 없었다. 그러니 온 들판이 게 천국이었다. 논두렁에 난 구멍을 파헤치고, 볕에 말리던 볏단을 들어 손쉽게 게를 잡을 수 있었다.

    “한 40년쯤 된 것 같아요. 농약과 화학비료가 뿌려지면서 게가 차츰 눈에 보이지 않게 됐어요.”

    이씨의 말에 아쉬움이 배어 나온다.

    시골 인심은 후하다고 한다. 그러나 논물을 대기 위해 이웃끼리 다반사로 얼굴을 붉혔던 것을 떠올리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감천에서 게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게가 적게 날 때는 탈이 없지만, 게가 많이 잡힐 때에는 서로 욕심을 부려 인심이 나빠졌다. 마을 어른들이 이를 보다 못해 고안했던 게 ‘끼줄땡기기’(게줄당기기)였다. 상감과 하감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게 모양의 줄을 당겨 이긴 쪽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했다. 그 후 게가 많이 나든 적게 나든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어졌다고 한다.

    감내게줄당기기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촌로들은 게줄당기기가 연중행사로 성행돼 오다 일제가 마을 단위의 각종 놀이를 금지하는 통에 사라졌다고 전한다.

    게줄당기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70년대였다. 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 하보경(작고) 선생 등이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게줄당기기를 하나하나 복원해 나갔다.

    감내마을에서 전승되던 게줄당기기는 1983년 마침내 경남도무형문화재로, 이씨의 장인 김상용(작고) 선생 등 3명은 보유자로 지정됐다.

    이씨는 장인과 이강석, 권재업 선생 등 보유자 3명이 모두 세상을 뜬 이후인 지난 2002년 전수조교로, 또 2년 뒤 보유자 후보로 예고됐다가 지난해 5월 김경호(79·농요 및 줄드리기)씨와 함께 나발 및 소도구 제작 보유자로 지정됐다.

    놋쇠로 만든 나발은 두 팔을 양옆으로 벌렸을 때 왼손 손끝과 오른손 손끝의 길이와 거의 일치한다. 한 발이다. 길이가 길다 보니 그 울림도 크고 오래간다. 마을에 불이 나거나 물이 들 때, 그리고 농사철에 시각을 알리는 용도로 쓰인 나발은 감내게줄당기기에서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나발소리에 맞춰 주민들이 입장하고, 또 신호에 맞춰 장을 정리하게 된다.

    이씨는 “처가가 감내 바로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에 장인어른이 부는 나발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자연히 감내줄당기기에, 특히 나발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감내줄당기기는 게를 닮은 줄을 당긴다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게의 몸통을 닮은 지름 2m의 몸통줄에 게 다리만큼인 다섯 줄의 젖줄이 양쪽에 걸린다. 이어 줄다리기 참여자가 목에 거는 가짓줄이 줄마다 다섯 개가 엮어진다.

    놀이는 나발소리에 맞춰 입장한 주민들이 당산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게줄당기기에서 이기는 편은 좋은 게잡이터를 차지하는 실리를 얻긴 하지만, 사특한 마음을 가지면 재앙을 입는다는 속설을 믿기에 당산을 찾아 싸움에서의 승리와 함께 마을의 안녕을 위해 치성을 올리게 된다.

    제를 올린 뒤에는 농발이놀이를 통해 장사를 뽑고, 춤과 노래로 역꾼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어 1:1 혹은 다수:다수가 겨루는 작은 게줄을 당겨 이긴 쪽이 줄다리기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줄다리기는 한 줄에 5명씩, 모두 25명이 한 편이 된다. 그리고 기수와 독전대 등을 합해 모두 60여명이 한 진영을 이룬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긴 편은 장내를 돌며 쾌재를 부르고 진 편은 통곡을 한다. 그러나 한 판의 싸움을 벌인 주민들은 화합의 판굿을 통해 서로의 응어리를 털어낸다.

    감내게줄당기기는 지난 1982년 4월 경남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같은 해 10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대개의 줄다리기는 역꾼들이 서로 마주보고 힘을 겨루지만, 감내게줄당기기는 줄을 목에 걸고 등을 보이며 판을 벌인다. 또 역꾼들도 두 팔을 땅에 짚어 게의 움직임을 흉내낸다. 이 같은 독특한 형식과 함께 시합 전후로 벌이는 당산제와 판굿으로 주민의 화합을 도모하는 연희 양식이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감내게줄당기기는 문화재 지정 이후 정월대보름 때마다 부북면의 마을을 순회하며 공연됐다. 그러다 지난 2006년부터 면민체육대회에서 일반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마당잔치로 펼쳐졌고, 올해부터는 밀양연극촌과 영남루 앞뜰, 밀양역광장 등에서 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및 법흥상원놀이(경남도무형문화제 제16호)와 함께 매년 여섯 차례 합동공연된다.

    내일동 민속예술관에서 이씨와 함께 게줄당기기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던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박동영(57)씨는 “문화재와 그 보유자들에 대한 지원에 인색할 경우,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며 “밀양시가 지역 문화재의 정기공연 횟수와 그에 따른 지원을 늘려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인인 김상용 선생 이야기를 하며 긴 호흡으로 나발소리를 들려주던 이씨. 이씨의 나발소리는 참게를 다시 감천과 그 들판으로 불러들이는 소리로 들린다.

    글=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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