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20일 (월)
전체메뉴

[작가칼럼] 가포를 지나가다 - 이서린 (시인)

  • 기사입력 : 2008-06-20 00:00:00
  •   
  • 없어졌다. 바다의 일부가 없어졌다. 친구의 차를 타고 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뭉텅, 가슴 한 쪽이 베어나간 느낌이다. 매립되고 있는 바다. 젊은 날의 한 꼭지였던 마산의 가포는 휘리릭, 사라지는 중이다. 사라지는 바다. 하긴,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랴.

    가포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담쟁이 넝쿨 무성한 ‘소낙비’, 지하가 아니면서 바다가 보여 낭만적인 탁구장, 다이빙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모래밭 언저리, 궁도장의 표적판, 사랑을 맹세하거나 이별을 통보받는 연인, 노를 저어야 하는 작은 배나 열심히 발로 젓는 오리모양 배를 타던 젊음, 그런 이들을 기다리는 찻집과 횟집, 찰박이는 바닷물에 물수제비를 띄우는 청년, 갯내음 속에서 노래 부르는 친구, 배를 정박시켜 놓고 손님을 받는 횟집에서 일생을 거는 사람….

    그때는 창동 아니면 가포였다. 스무 살 젊음은 창동을 배회하다가 속에서 울컥 그 무엇이 올라오면 가포로 향했다.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결핵요양원 앞을 지나 버스종점에 내리면 바다가 거기 있었다. 무슨 큰 위로인 양 바다를 향해 팔을 벌리다가 가슴을 싸안으며 행복해 했던 청춘들. 창동과 가포는 젊음의 표상과도 같았다.

    그 당시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고달픈 청춘이나 창원공단 안, 타향의 청년들도 외로움과 생의 무게를 가포에서 달래곤 했다. 그러나 젊음이 가듯이 함께 하던 공간도 사라지거나 변하는 것.

    애석하지만 없어지거나 변하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 아니겠는가. 우주가, 지구가, 이 땅과 산천이 처음에 지금의 모습이었겠는가. 산이 생기고 강이 생기고, 길이 나고 집들이 들어서고, 시간이 지나면서 산천과 수목이 없어지거나 새로 생기거나 여러번 바뀌었을 것이다. 변하는 세월 곁에 추억 속의 풍경과 공간이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야 다들 갖고 있지만,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하는 법.

    폭우와 폭설, 태풍과 해일로 산이 무너지고 길이 끊어지고 바닷가 풍경이 바뀌는 것도 자연의 한 현상이다. 그리하여 없던 계곡이 생기거나 산세가 변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피해를 입거나 소통에 지장이 있으면 복구를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억지로 복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구는 스스로 진화하거나 자정(自淨)하는 능력이 있다. 아주 옛날 빙하기가 있어서 지구가 한 번 뒤집혔듯이, 지금의 이런 현상도 지구가 변해가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의 짧은 생각과 실수로 자연이 파괴되고 군데군데 피 흘리는 산천이 왜 없겠는가. 산이 잘리고 나무가 사라지고 바다가 오염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도 느낀다. 허나 그런 것도 시간의 흐름에 의한 현상이라고 본다.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누린 문명에의 혜택. 그로 인한 인과응보, 결과는 감당해야 할 것이다.

    시간과 함께 멸종되는 것과 퇴화하는 것, 새로운 변종이 생기듯이 도시가 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도시 형태가 바뀌고 따라서 주변의 지형도 바뀌는 것이다. 지형의 변화는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람 손에 의한 지형의 변화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 청춘의 한 꼭지였던 가포. 그 바다가 매립되는 것도 언젠가 생겨야 할 일이라면, 추억 속 아쉽고 애틋한 시간과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하리라.

    지나간 시절,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소로 가끔 친구와의 수다 속에서 꺼내 볼 일이다.

    작가칼럼

    이 서 린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