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고깃집에서 열린 대학 동기 모임에서 김민규(31)씨는 술잔을 돌릴 차례가 오자 막걸리와 소주, 사이다를 주문했다.
민규씨는 회사생활을 일찍 시작해 그간 친구들에게 `타이타닉주', `부황주' 등 다양한 폭탄주 문화를 전파해왔던 주인공이어서, 당연히 "그걸로 무엇을 만들겠다는 거냐"는 동기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러자 민규씨는 맥주잔에 막걸리를 절반 정도 따른 뒤 소주잔 한잔 분량만큼 소주를 섞고 나머지는 사이다로 채웠다.
이는 막걸리와 소주, 사이다 양의 비율이 6 대 1 대 3 정도로, 민규씨는 잔을 젓가락으로 잘 저은 뒤 옆 자리에 앉은 김은재(31.여)씨에게 내밀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것 같다며 고개를 흔들던 은재씨는 민규씨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술잔에 입을 댔다.
"어, 이거 달달한 게 생각보다 맛있네…"
"그렇지? 맛있지? 이게 막걸리랑 소주, 사이다를 섞었다고 해서 `막소사'야. 요즘 이게 대세라니까."
웰빙바람과 함께 양폭(양주폭탄:위스키+맥주)과 소폭(소주+맥주)이 점령하던 `폭탄주 세계'에도 `순한 폭탄' 바람이 불고 있다.
순한 폭탄주의 대표주자는 `막소사'다. 혼합재료 간의 상호작용으로 막걸리의 시큼함과 소주의 역한 맛은 사라지고 새콤달콤한 맛은 더욱 강조된다는 게 애호가들의 설명이다.
양폭이나 소폭 같은 독주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과 건강에 신경을 쓰는 남성에게 인기를 끈다.
막소사의 인기는 주재료인 막걸리의 매출 신장세를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편의점인 GS25의 올해 1∼5월 막걸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늘었으며, 특히 5월에는 작년 동월보다 69.5%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존의 양폭과 소폭도 알코올 도수나 양이 대폭 줄어든 미니 사이즈가 유행이다.
예전처럼 맥주잔을 폭탄주로 꽉 채우는 게 아니라 절반만 따르고, 양주나 소주의 함량도 3분의1로 줄인 `미니 폭탄'의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
양주를 물에 타먹는 `물폭탄주', 양주나 소주를 음료수에 타 마시는 칵테일형 폭탄주도 웰빙시대에 지지층을 넓히고 있다.
회사원 김모(30.여)씨는 "맥주잔에 가득 채운 폭탄주를 볼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요즘 폭탄주는 큰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며 "독한 폭탄주를 마실 때보다 오히려 회식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독한 술을 빨리, 많이 마시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기존의 음주문화가 웰빙바람을 타고 `마실 수 있는 만큼만 즐겁게 마시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