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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사탄의 이슬- 강태룡((주)센트랄 회장)

  • 기사입력 : 2009-1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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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김없이 2009년 한 해는 저물어 간다.

    이때쯤이면 각종 송년회로 술 마실 일들이 많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과음하면 몸을 망치는 독이 된다. 그런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적당히’가 참 어렵다. 그래서 술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유태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으려 하는데 사탄이 찾아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사탄은 다시 “포도란 어떤 나무지요?”하고 물었다. 노아는 “포도는 과일인데 아주 달고, 또 적당한 신맛을 가지고 있소. 그리고 이것을 발효시키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술이라는 것이 된다오”라고 했다. 이에 사탄은 “그렇게도 좋은 것이라면 나도 거들기로 하지요”했다.

    노아는 사탄을 고맙게 여겼다. 사탄은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끌고 와서 죽이고, 그 피를 밭에 흘려서 비료로 했다. 그렇게 하여 자란 포도열매로 술을 담갔다. 그리고 나서 노아가 술을 마셨더니 처음에는 양처럼 순하다가 좀 더 마시면 사자처럼 거칠어지고, 그보다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러워지고, 나중에는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고 희롱하며 떠들고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이다.

    술은 타고난 태생 자체가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을 더 많이 안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암시를 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스파르타 사람들은 노예에게 술을 먹인 후 연회장에 끌고 들어와서 그 노예들이 연출하는 추태를 청년들에게 보여주며 ‘술 취한 자는 저렇게 된다’고 교훈했다고 한다. 불경인 팔만대장경에도 ‘술은 번뇌의 아버지이며, 더러운 것의 어머니’라고 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책문이란 것이 있다. 소과를 합격한 진사, 생원, 성균관 유생들 중에 3년마다 또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대과를 치르고 최종 33명을 뽑는다. 이 최종 합격자들의 등수를 매기기 위해 왕 앞에서 치르는 시험(殿試)이 바로 책문(策問)인데, 여기에는 대개 그 시대의 이슈가 반영된다.

    중종 11년(1516년), 임금은 별시문과에서 술의 폐해에 관한 책문을 내렸다. 이에 김구(1488~1534, 성종 19년~중종 29년)라는 자가 술의 폐단과 해결방안을 대책(對策)으로 내놓아 급제를 하였다.

    그는 세상에는 생기기 쉬운 폐단과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는데, 생기기 쉬운 폐단은 사물의 폐단이고,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은 정신의 폐단이라고 하였다. 또 정신의 폐단이 원인이고 사물의 폐단이 결과인데, 술은 바로 정신의 폐단이기 때문에 구제하기가 어려운 폐단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술의 폐해를 지적하는 대책으로 만난 중종과 김구가 서로 흉금을 터놓고 마음을 나눌 때는 역시 술의 힘을 빌렸다고 한다.

    연산군의 술로 인한 폐해를 보고 금주령까지 내린 중종도 결국 술의 오묘한 유혹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술이 사회생활에 주는 순기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술이 주는 역기능도 많다. 가장 큰 역기능은 본인의 건강을 해치고, 남에게는 실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중종 책문에서 김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술은 사람에게 재앙을 끼치니 즉시 없애야 한다. 술은 예의를 잃게 하니 즉시 버려야 한다.”

    하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농반 진반으로 이렇게들 말한다. “몸에 해로운 술, 마셔서 없애자(?).”

    올해 송년회도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남에게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마시고 자제하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강태룡((주)센트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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